#지난 5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행사명은 ‘정신질환범죄 방지와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입법공청회’.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이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관련법 개정안을 두고 ‘전문가’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정신장애단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8일 후인 13일 오전 11시. 국회 정문 앞에서 11개 정신장애단체가 참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11개 단체라지만, 각 상근 활동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마침 초여름 뙤약볕이 따가웠다. 에어컨이 돌아가던 공청회장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들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었다. 바람에 현수막이 펄럭이자, 경찰 관계자가 보다 못해 현수막 하단을 발로 밟아 고정하라고 귀띔했다. 집회를 통제코자 곁에 선 경찰의 눈에 이들이 퍽 허술해 보인 모양이었다. 그 말대로 하자 그제야 현수막이 팽팽해졌다. 공청회장에서는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당사자를 배제한 입법공청회 원천무효. 정신장애인 혐오를 조장하는 언론인 각성 및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는 반인권적 입법공청회 규탄.” 현수막에 적힌 문구였다. 한 활동가의 피켓에는 “우리 없는데서 우리 이야기 하지 마시오. 정신장애인이 참여하는 정책을 만들라”고 쓰여 있었다.
성명서의 구절마다 비통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일부 범죄자들에게 정신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을 범죄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에 울분을 표했다. 그리고 정신장애인이 약물복용을 중단하면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예비범죄자인냥 왜곡하는 것에 분노했다.
강제입원 후 퇴원한 정신질환자가 사망하는 수가 적지 않고 퇴원 후 약물복용을 거부하는 일도 많다. 상당 기간 동안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탓에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감정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숱한 정신장애인들이 정신요양시설과 정신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비참한 현실을, 이들은 직시하라고 소리쳤다.
◇ ‘2등 국민’으로 몰아가는 사람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정신장애단체 활동가들은 “혐오를 멈추고 사회적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의 말이다. “정신장애인의 치료가 필요하다면서 치료 환경은 되어 있지 않고, 아파도 갈만한 병원도 없다. 정신장애인이 숱하게 죽어나가도 뉴스에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감춰져 있다가 범죄사고가 터지면 싸잡아 질타를 받는다. 정신장애인이 모르는 사이에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당사자들만 피해를 입는다. 정신장애인은 이 나라의 국민도 아닌가.”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소장은 앞선 입법공청회를 거론하며 일갈했다. “정신장애인을 보듬지는 못할망정 국회가 나서서 정신장애인을 배제시키지 말라.”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도 유 소장의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신장애인 시설을 두고 ‘지역에 혐오시설 설립을 막겠다’거나 아예 정신장애인을 혐오할 존재로 모는 정치인들이 있다.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전무한 상황에서 의지를 가진 이들조차 직업 재활에서 번번이 거부당한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 씁쓸함이 느껴졌다. 이날 현장에는 대략 서너 명의 기자들이 있었다. ‘정신장애인이 죽어나가도 기사 한 줄 안 나온다’는 이정하 대표의 말에 골몰해 있는데, 유동현 소장이 생수 한 병을 건넸다.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내뿜은 열기에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는 취재를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생수를 받을 수 없었다. 물은 현장의 사람들에게 한 병씩 돌아가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누군가는 철문 하나만 지나면 도착할 곳이 국회인데, 또다른이는 그 문턱을 넘기조차 버겁다. ‘배제’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미지근한 생수를 나눠 마시며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서야만 하는 삶이 있다. 흡사 ‘2등 국민’인 것 마냥 평생을 손가락질을 받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정신장애인이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