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의 폐기물 정책에 의료기관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기관들에게 당장 직면한 문제는 ‘의료폐기물’ 처리규정의 변경이다. 환경부는 최근 의료폐기물의 분류기준을 보다 명확히 그리고 까다롭게 개정했다. 그 때문인지 의료폐기물 배출량이 기존 증가율을 넘어섰고, 종국에는 소각장의 처리용량을 초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환경부에 따르면 처리장 가동률은 이미 법정한계용량인 130%에 육박했다.
의료기관의 부담도 적게는 20~30%, 많게는 100% 이상 증가했다. 까다로워진 분리배출 규정에 따라 추가되는 인건비는 제외하더라도 고령화 등으로 환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전국 13곳에 불과한 의료폐기물 지정소각시설로는 2만여 곳이 넘는 의료기관의 의료폐기물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러다보니 소각시설들의 요구가 ‘갑질’ 수준으로 늘었다. 한 국공립 의료기관 관계자는 “최근 폐기물처리시설과의 재계약을 위해 협상하는 과정에서 2016년 대비 2배의 비용을 지불하겠다는데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려 했다”며 “결국 조정절차까지 거치고서야 기존비용보다 30%를 더 올리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지만 다른 기관들은 더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전지역 종합병원 관계자는 “의료폐기물을 아무리 줄이고 분리배출해도 한계가 있는 반면 처리비용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솔직히 부르는게 값인 상황”이라며 “2배가 넘는 비용에도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일부 소각업체는 운반비용까지 독차지하고자 계약조건에 운반에 관한 사항을 포함시키려고도 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난 26일 환경부는 비감염성 질환으로 분류된 환자들이 사용한 일회용기저귀를 일반폐기불로 소각하되 여타 일반폐기물과 분리 배출·보관·운반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의료기관들의 불만은 오히려 커졌다. 일반폐기물로 분류하면 배출량이야 줄어들 수 있겠지만, 여타 일반폐기물과 분리해 배출·보관·운반을 해야 해 추가적인 인력과 비용이 소요되고 분류 작업에서 발생하는 감염이나 기타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한 지방대학병원 관계자는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일회용기저지 분리배출은 또 누가 하냐. 환자들에게 분리배출을 하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서 “결국 인력은 추가되고 안전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더 생길 수 있어 그냥 의료폐기물로 버리자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문제는 의료폐기물에 이어 음식물폐기물 처리과정에서의 비용부담도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환경부는 지난 5월 13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 국내유입 및 확산방지를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며 남은 음식물(잔반)을 농가에서 직접 처리 후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만약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가 마련 중인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이 완료되면 농가에서 폐기물처리업체를 거쳐 의료기관 등에서 생산된 잔반을 직접 재사용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이는 폐기물처리업체의 수익감소로 이어져 폐기비용의 증가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병원계 관계자는 “잔반 재사용을 금지하는 시행규칙이 공표되면 음식물폐기물 비용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몸이 아파 입맛도 없는 환자에게 밥을 적게 주고 다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기본적인 인건비 증가와 의료폐기물 처리비용 상승에 더해 음식폐기물 처리비용까지 오르면 의료기관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답답함을 표했다.
다행이라면 환경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 24일 종료된 행정입법예고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접수됐고, 이를 반영해 앞서 공개된 개정안을 일부 수정해 다음 주부터 재입법예고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ASF 예방을 위해 돼지에게 남은 음식물을 먹이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음식물류폐기물의 재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마저도 농림부에서 규모가 큰 곳은 봐주자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며 “이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지만 (개정안이 발효되면) 솥뚜껑과 같은 업체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폐기물 비용증가는 아직 추측이다. 그게 시장을 완전히 뒤엎을 정도의 양은 아니다. 재사용되는 양 자체가 많지 않고 전국단위이기에 우려할 만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잔반처리업체들도 계약에 묶여 비용을 올리고 하지는 못 한다고 한다. 나름대로 대책을 면밀히 채워 구멍이 나지 않도록 철두철미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