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년들에게 희망 뺏는 ‘역세권 청년주택’

[기자수첩] 청년들에게 희망 뺏는 ‘역세권 청년주택’

기사승인 2019-07-26 05:00:00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 뇌파를 가장 많이 흔들어 놓는 단어는 ‘잃다’였다고 한다. ‘건강을 잃다’ ‘사랑을 잃다’ 등 잃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새삼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걸 잃어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어느 옛 가수의 노랫말처럼 어쩌면 산다는 건 상실의 연속일 것이다. 그럼에도 잃어서는 안 될 단 하나의 가치를 꼽으라면 희망을 꼽고 싶다. 희망에는 잃는 두려움으로부터 우릴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여기 희망조차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년 1인 가구’다. 이들은 기득권층의 책임전가, 지역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몸을 뉘일 작은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역세권 청년주택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1인 가구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난 2016년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만19세 이상 39세 이하 청년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관련 커뮤니티 시설을 도입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현 정부의 주거복지정책과도 맞물려 청년들에게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주거 복지 방안이 될 거란 기대를 크게 받았다.

하지만 취재결과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사업이 발표된 2016년도부터 지난 3년 간 배정된 예산 중 실제 집행된 금액은 20% 가량에 불과했으며, 실제 집행된 예산 내에서도 사업인가가 완료된 곳은 목표치의 18% 수준에 불과했다. 당초 2022년까지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대대적인 홍보는 청년들에게 더욱 큰 낙담을 줬다. 서울시는 청년들에게 자체 방송 채널을 통해 좋은 정책이 있는데 참여가 저조하다며 신청을 유도했다. 또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블로그에 ‘올해 입주자 모집 예정’ ‘7월 모집’ 등의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사업에 진전이 없는지 취재해봤다. 돌아온 대답은 청년들을 두 번 울렸다. 관계자들은 사업 지연 책임을 민간 사업자와 서로에게 떠넘기기 급급했다. SH공사는 실행부서이기 때문에 잘 모른다며 서울시에 문의해보라고 말했다. 시는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원체 수익성 없는 사업이다 보니 민간 사업자가 참여를 잘 안한다고 이들 탓을 했다. 또 참여 중인 업자 핑계를 대며 공사 지연에 대한 다양한 변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주택이 들어서는 지역 내 이기주의도 한 몫 했다. 과거부터 청년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설 인근 지역 주민들은 일대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란 우려로 시위를 해왔다. 실제 관악구 신림동, 마포구 창전동, 영등포구 당산동 청년임대주택 등 대다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주민들의 반대로 수차례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통계층 등 여러 조사 기관에 따르면 청년층의 주거 빈곤 현실은 가혹하다. 특히 생산 활동을 막 시작하는 청년층은 금융기관의 도움도 상대적으로 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에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민관협력 청년주택사업은 더욱 절실하다.

정부와 서울시가 내세운 청년 역세권 주택의 공급 취지는 매우 좋다. 그러나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 함께 수립돼야 할 것이다. 또 지역 주민들은 역세권 청년주택에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주거 빈곤에 시달리는 청년층이 편히 쉴 곳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존의 역량이 필요하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지자체와 지역 주민 간의 소통을 통해 청년들에게 희망을 뺏는 것이 아닌 줄 수 있는 사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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