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소상공인연합회, 日 경제보복 강력 규탄

김해소상공인연합회, 日 경제보복 강력 규탄

기사승인 2019-08-02 09:40:58

임진왜란 최초 의병장으로 일컬어지는 사충신(四忠臣)을 배출한 고장인 김해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해시소상공인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와 시민 300여명은 1일 김해시민의 종 앞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일본이 우방국인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조짐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소상공인연합회와 나들가게협의회, 여성단체협의회, 자원봉사단체연합회, 바르게살기협의회 등 20개 시민단체 회원들은 대형 현수막에 부산 일본영사관에 보내는 메시지 작성 퍼포먼스 등으로 일본의 경제 보복에 거세게 항의했다.  

또 일본제품 안 팔고, 안 사고, 안 가고, 안 타고, 안 입는 '5NO 운동'에 전 시민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일본 경제 침략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양대복 회장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김해성을 지키다 순절한 사충신의 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경제왜란, 기해왜란을 일으킨 일본 아베 정권의 치졸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해 사충신인 송빈(1542~1592), 이대형(1543~1592), 김득기(1549~1592), 류식(1552~1592)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이 이어 김해성을 공격할 당시 김해성의 주장군이던 서례원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자 백성들과 함께 군대를 조직해 왜적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남아 있는 기록상 임진왜란 최초 의병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3년만인 1600년(선조 33년)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벼슬을 하사했다.

또 1708년(숙종 34년) 지방사림의 도움으로 현재 김해시 동상동에 송담사와 송담서원을 각각 세워 위패를 모셨다가 1833년(순조 33년) 표충사로 개명했으며, 1871년(고종 8년) 단을 설치해 사충단으로 명명하고 비를 세웠다.

김해시는 김해성으로 쳐들어 온 왜적에 맞서 사흘 간 성을 지키다 순국한 음력 4월 20일 매년 제례를 올리며 사충신의 우국충절의 넋을 기리고 있다.

김해=강우권 기자 kwg1050@kukinews.com

강우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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