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님이 편의점에 들어선다. 마치 물건을 맡겨둔 듯, 필요한 상품을 빠르게 집어 들고 다시 훌쩍 나가버린다. 매장에 머문 시간은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매장 안내를 돕기 위해 서 있던 매장 직원은 “어서오세요”를 입 밖에 내자마자, 얼른 “안녕히가세요”로 고쳐 말했다. 최근 일반 고객에 개방한 한 무인 결제형 편의점에서 기자가 목격한 광경이다.
문을 연지 며칠 안 된 14평의 작은 매장이지만, 벌써부터 인근 회사원과 주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은 대표적 무인매장으로 꼽히는 미국 ‘아마존고’의 ‘Just Grab and Go’ 기술을 벤치마킹한 국내 최초의 유통 매장이다.
천장에 약 30개의 카메라가 달려 있고, 일반 진열대로 보이는 매대엔 무려 850개의 ‘중량 감지 센서’가 있단다. 이 두 감각기관(?)이 보고 느낀 것을 종합해 무인계산이 진행이 된다. 카메라는 매장내 사람들을 하나의 좌표로 인식한다. 예를 들면, ‘X축 Y축 몇 번째 점(사람)이 매대 몇 번째 위치의 짜파게티(상품)을 집는 행동을 인식했다’라는 식의 연산이 이뤄진다.
해당 제품이 있는 진열대의 센서는 무게 변화를 토대로 실제로 이 제품이 사라진 것을 감지한다. 아이스크림 등 냉동식품과 껌과 같이 무게가 작은 제품도 모두 예외 없이 적용된다. 물론 실험매장인 만큼, 완벽하지 않다. 카메라가 인식할 수 없게 물건을 동시에 집어 들거나, 물건을 매장 내에서 타인에게 건넨다던지 하는 돌발 상황에선 계산 오류가 나타난다.
놀라운 점은 이 같은 오류 상황 역시 AI가 ‘딥러닝’ 통해 학습해나간다는 사실이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매장 내 카메라와 센서는 더욱 진화한다. 아직까지 이 매장은 글자와 숫자를 읽는 단계의 어린아이인 셈.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몇 년 후에는 상당한 수준까지 무인 계산이 진행 될 것 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무인이 현실이 된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지만 눈앞서 생생하게 펼쳐지니 충격이 상당했다. 추후엔 손님의 얼굴까지 인식해 개개인의 선호까지 파악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금방 이조차도 식상하고 당연한 일상이 되겠지.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정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맴돌자,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며 두려움이 앞섰다.
매장 키오스크를 한번 떠 올려 보라. 불과 몇 년만에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가 됐다. 지난 일주일을 되돌아보면, 기자는 사람보다 키오스크 계산을 더 많이 했다. 이 매장의 아르바이트 직원 역시 매장에 대한 관리보다는 무인 매장에 대한 안내가 주 업무였다. 처음 방문하는 손님에게 출입 앱 설치 및 유의 사항에 대해 공지하느라 바빴다.
과연 우리는 무인·자동화 시대에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다가오는 변화를 그냥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건 아닌지. 변화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며 기존의 사회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은 것 같아 염려스럽다. 인간의 일자리가 한순간 사라지는 상황은 기우라고 여기며 말이다.
몇 해 전 중국 광둥성 둥광시의 한 정밀부품 제조업체는 2015년 완전 자동화를 선언하며 무인설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생산성은 250%나 높아지고, 불량 부품은 80% 감소했다. 이 공장엔 과거 650명이 일했지만, 현재 60명의 직원만이 로봇 관리 업무 정도를 맡고 있다. 공장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이곳의 ‘인간 근로자’가 20명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연 인간은 앞으로 무인·자동화 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묻고 묻다보면 결국 드는 생각은 ‘우리는 왜 사는가‘다. 개개인이 풀어야할 문제면서도, 인류 전체의 여전한 난제다. 어찌 보면 그간 공학의 발달은 빨랐지만, 존재 자체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문학적 합의나 노력은 방치되어 왔는지 모르겠다.
무인 매장 게이트 앞에 서서 인사만 하는 직원을 보며 뭔지 모를 씁쓸함과 괴리감을 느낀 겼던 이는 나뿐 만이 아니었을 터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