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삼권분립국가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을 이뤄 국가를 운영한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국가운영의 원칙이 깨지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농담이라지만 의원내각제로의 전환도 멀지 않았다는 말까지 들린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위원에 현역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많아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국민의 ‘눈높이’라는 명분아래 이뤄지는 엄격함과 ‘동료의식’에 입각해 ‘현역불패’라고까지 표현됐던 관대함이 공존해온 인사청문회 문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이러한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도덕성과 공정성을 내세워온 문재인 정권의 태생이 원인이 돼 과거 정부보다 엄격해진 인사검증기준에 역대 최다 인원이 국회의 인준을 거치지 못한 채 국무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마저도 인사검증에서 보다 자유로울 것이라며 교수출신 학자들을 대거 기용했지만 발생한 결과다. 더구나 정점으로 찍었다고도 평가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로 인해 장관직을 제안해도 거절하는 인물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해진다. 때문인지 최근 현직 국회의원 출신 국무위원의 수가 정권 초와 비교해 많아졌다.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조 전 장관이 장관 후보자가 돼 부인과 아들·딸, 친인척까지 검찰 수사대상이 되면서 검찰이 개입하게 됐다”면서 “요즘에는 장관을 하라고 하면 다 도망가는 세상이다. 내가 알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을 해보시라’고 했는데 27명이 ‘못하겠다’고 해 (고사한 사람이) 최고로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도 있다.
또한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힘을 받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청문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여야 전·현직 원내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이 모여 ‘인사청문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제로 인사청문 제도개선 토론회가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과도한 ‘신상털기’식 진행과 정쟁으로 번지며 국론을 가르고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키우는 사태를 막아야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어 인사청문회를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하는 절차로 분리하고, 청문기간을 늘리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한 진보성향의 정치평론가도 “인사청문회는 입법부의 행정부를 향한 ‘견제’라는 측면에서 분명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조국 사태”라며 “도덕성 등의 검증은 1, 2차로 나누고, 1차는 청와대 등에서 보다 긴 시간을 들여 파악하고 2차로 국회에서 절차와 결과에 대한 점을 따지는 방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일련의 논의가 아직 제도변화로까지 이어지기에는 시일이 걸리는 반면,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로 당장 국무위원의 공석이 발생한 만큼 조만간 인사청문회가 또 다시 열려야해 유사한 청문과정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우려해서인지 문재인 정부 차기 법무부장관으로는 또 다시 현역 국회의원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분명 대다수 국회의원은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이들로 대표성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전문성을 갖췄는지, 행정가로서의 자질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았다. 더구나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이들의 뿌리는 입법부인 국회다. 제1직업도 정치인이다. 과연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내각이 삼권분립의 한 축이 될 수 있을까. 인사청문회의 개선방향과 함께 고민해야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