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액상형 전자담배는 ‘블랙독’이 아니다

[기자수첩] 액상형 전자담배는 ‘블랙독’이 아니다

기사승인 2019-10-29 04:00:01

서양 문화권에서 검은 개는 공포를 의미한다. 영국의 동화작가 레비 핀폴드는 자신의 작품 ‘블랙독’을 통해 막연한 공포를 그려냈다. 마을에 나타난 검은 개는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마다 점점 몸집이 커졌다. 처음 호랑이만했던 검은 개는 ‘코끼리만해졌다가’ 나중에는 ‘티라노사우스르’ 만큼 커졌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막연한 공포는 전염병처럼 마을을 휩쓸었다. 이 검은 개는 실체를 똑바로 마주한 한 꼬마아이에 의해 제 크기로 돌아갔다.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권고한 지 불과 사흘만에 사실상 시장 퇴출이 이뤄졌다. 일부 채널을 통해 구입이 가능하지만, 판매창구의 70%에 달하는 주요 채널인 편의점 상위 4사가 판매를 중단했다. 

이는 지난 23일 정부가 중증 폐질환 발병의 원인으로 액상형 전자담배으로 보고 사용 중단 권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공급 중단 대상품목은 KT&G의 ‘시드툰드라’와 쥴(JULL)의 ‘트로피칼’, ‘딜라이트’, ‘크리스프’ 등 4개 품목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와의 연관성의 이심되는 중증 폐질환 사례가 1500여건 보고됐다. 이 중 33건의 사망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의심 사례가 1건 발생하자 정부 차원에서 제동을 건 것이다. 

정부가 연구용역을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성분검사에 나섰지만 불안감을 걷어내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음달 중 발표되는 내용은 THC 함유 여부만 관련돼있고 권고 내용에 포함된 일반 니코틴 액상에 대한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나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의 사용 중지 권고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중증 폐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성분은 대마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카라비놀(THC)과 비타민E 아세테이트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자담배용 액상에는 해당 성분이 포함돼있지 않다. 국내 의심사례로 분류됐던 1명의 환자 역시 현재 퇴원했으며 후유증에 대한 보고가 없다는 점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내용의 외신 등이 공유되고 있다. 중증 폐질환이 발생한 미국 등지에서 합법 대마초에 대한 과세가 높아지자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 불법 액상 대마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포함된 액상을 사용한 이용자들에서 폐질환이 발병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자담배협회 역시 정부 결정에 반발해 “미국의 사망은 우리나라와 전혀 관계 없고,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궐련형 담배와 비교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더 유해하다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반박했다. 

막연한 공포는 시장의 고사를 부른다. 액상형 전자담배 업체는 물론, 일선 전자담배 소매점에서는 이미 매출 절감을 느끼고 있다. 

국민건강은 가장 우선돼야할 대명제다. 그러나 막연한 공포를 야기해서는 안된다. 정확한 판단과 정보, 규제를 통해 시장과 국민건강을 모두 지켜내야한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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