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의료기기 규제 완화?…“환자가 마루타인가”

혁신 의료기기 규제 완화?…“환자가 마루타인가”

기사승인 2019-11-07 04:00:00

시민단체가 정부의 의료기기 및 의약품 규제완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안전성’만큼은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6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의료기기와 의약품 규제완화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신청한 대전시와 충청북도를 규탄하면서, 이는 정부정책의 산물이라고 질타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에 따르면, 대전시와 충청북도는 규제자유특구법(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 상 규제특례로 의료기기와 의약품 규제완화를 중소벤처기업부에 신청했다. 대전시가 신청한 내용은 ‘체외진단 의료기기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임시허가’다. 체외진단기기를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2년간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하고, ‘후평가’를 하자는 것이다. 충청북도는 자가유래 자연살해세포(NK세포) 면역세포치료제를 임상 1상만으로 통과시켜달라며 임시허가를 신청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체외진단기기는 단순 혈압·혈당기만이 아니다. 조직세포, 혈액, 소변, 대변, 타액을 이용해 면역화학적 진단, 분자진단, 조직진단 등을 하는 온갖 의료기기를 포괄한다”며 “이런 검사결과는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에 결정적이므로 매우 정확해야 한다. 체외진단기기를 신의료기술평가 없이 환자에게 도입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체외진단기기 기술평가를 유예하는 갖가지 규제완화를 추진해왔는데, 대전시는 이것도 부족하다는 기업의 생떼를 받아들여 더 평가절차를 쉽게 해주겠다는 것이다”라면서 “대전 시민들 뿐 아니라 대전시에서 진료를 받을 모든 국민들의 안전을 팔아넘기려는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NK세포치료제는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치료제가 없을 정도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이다. 그런데 단지 1상만 통과한 치료제를 환자에게 도입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환자를 ‘마루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라면서 “그런데 이러한 특례신청은 지자체의 일탈이 아니라 규제완화 정부정책의 산물이자 그 일환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7월, ‘체외진단기기’가 식약처 허가 취득 이후 시장진입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것을 개선하고자 ‘선진입·후평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선진입‧후평가가 이뤄지는 체외진단기기는 식약처 허가 취득 이후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치지 않고 건강보험 등재 절차로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4월에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이 통과됐다. 내년부터 인공지능(AI)·로봇·3D프린팅 기기 등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허가 심사 특례 등이 지원되는 것이 골자다.

‘재생의료’를 중심으로 의약품 규제완화도 이뤄지고 있다. 올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관리법’이 통과되면서 내년부터는 바이오의약품의 신속심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법안은 특정 질환의 세포치료제·유전자치료제의 안전성·유효성이 임상 2상을 통해 검증됐을 시 조건부 허가로 시판하고, 이후 임상 3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새로운 방식의 의료기기는 ‘혁신’ 의료기기라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도 환자에게 사용되도록 법을 개정했다. 임상 3상은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확증하는 단계인데 이를 건너뛰게 했다”며 “환자가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의 실험대상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번 규제특구 신청은 바로 이런 정부의 규제완화를 더 심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같은 규제완화가 ‘안전성’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됐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과 관련해서는 해외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는 환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암, 희귀질환 등 대상도 명확하다”며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 우선 쓸 수 있도록 이들 질환 치료제 중 임상 2상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됐을 시 조건부 허가를 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장기추적조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에 안전성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분에서의 규제완화도 안전성과는 관련 없는, 불필요한 절차 해소를 위해 진행되는 거다. 예를 들어 의료기기 등급은 인체에 미치는 잠재적 위해성 정도에 따라 분류하는데, 1등급 의료기기에는 진료용장갑, 의료용침대 같은 것이 해당된다. 이런 것까지 규제를 강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식약처의 문제는 인력이다. 의약품, 의료기기 허가심사에 필요한 인력이 적어 허가 과정에 필요한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인력충원을 위해 내년도 예산을 167억 확보한 상황이고, 향후 3년 내 심사 인력을 2~3배 늘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올해 4월 기준 식약처 내 의료제품 심사인력은 총 176명이다. 이 가운데 의약품은 74명, 바이오의약품은 59명, 의료기기는 43명에 불과하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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