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 논의, 비례대표 선출 ‘투명성’ 외면한 채 겉돌아

‘패트’ 논의, 비례대표 선출 ‘투명성’ 외면한 채 겉돌아

기사승인 2019-11-20 05:00:00

패스트트랙(신소처리법안)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논의방향이 정작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오는 27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 부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 여·야 5당 대표와의 정치협상회의 등을 열며 국회 본회의 상정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앞장섰다.

그렇지만 개정 협상은 본회의 부의를 8일 앞둔 19일까지 뚜렷한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 간 협상은 계속 겉돌기만 한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행 처리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총력 저지를 위한 명분 쌓기에만 매진하는 모습이다. 나머지 야 3당도 비례대표 의석수 변경이나 국회의원 월급인하 등을 제안했지만 별다른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에는 여·야 5당 대표 정치협상회의를 앞두고 실무모임이 이뤄졌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실무모임에 참석 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지금 말 할 내용이 없다. 이번 주 중 국회의장 주재로 5당 대표가 참여하는 정치협상회의를 열고, (실무자는) 수요일에 한 차례 더 모이기로 했다”고만 전했다.

이날 회동에 참여한 이기우 국회의장 비서실장, 여영국(정의당)·김관영(바른미래당)·김선동(자유한국당)·박주현(민주평화당) 의원 등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다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1시간이 넘는 이날 모임에서 선거법 개정안의 내용에 대한 유의미한 합의는 이루지 못했다. 선거법 개정을 유일하게 반대하고 있는 한국당에서 어떤 협상안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에서 소위 국외활동금지령까지 내렸다. 날치기 대기조까지 꾸려진 것”이라며 “지역구 의석수 늘리려다 안 될 것 같으니 이제는 지역구를 조금만 줄여서 의원들 불만 달래보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알 필요 없다던 정체불명의 고차방식 선거법을 이제는 난수표 방식으로 바꿔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불법으로부터 시작된 패트(패스트트랙) 자체가 원천 무효이며 따라서 3일 부의니, 며칠 부의도 사실상 의미 없는 말이라는 것”이라며 “답은 딱 하나다. 패트 무효 선언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여야 협상의 시작이다.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입장을 밝혔다. 패스트트랙 선정자체가 불법인데다 본회의 부의도 잘못된 상황에서 협상안을 마련하거나 제시할 이유는 더욱 없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8일 의원총회에서 “선거법 개정안 심의 마감시한이 오는 26일이며 27일부터는 본회의에 회부돼 상정이 가능하게 된다”며 “다음 주부터는 정말 국회에 비상이 걸리는 상황이 올 것 같다”고 한국당을 압박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황교안 대표는 민심을 반영해 의석의 국민 대표성을 높이는 선거법의 개정이 ‘자유민주주의를 흔든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며 “압도적인 궤변”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일련의 논의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비례대표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선정의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 확보 등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우선이다. 통과된 후 개정해도 된다”며 후순위로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한 야당 관계자는 “정당지지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이 결정되는 만큼 정당의 뜻이 최대한 반영된 인사들로 정당이 배정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선정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에 정치평론가들을 비롯한 정치계 인사들은 ‘뭘 모르는 소리’라는 식의 답답함을 표현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요구는 결국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바로 적용을 전제로 하고 있어 비례대표가 늘어나는 만큼 정당이 내세운 비례대표들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방안도 함께 강구돼야한다는 지적이다.

한 보수 성향의 정치계 인사는 “비례대표 선정을 두고 정당 내 뒷거래가 만연하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을 조정하거나 월급을 줄인다는 등의 논쟁은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 아니냐”면서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하는 국회,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의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보 성향의 정치평론가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도 “만약 선거법 개정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정당만을 보고 투표하게 돼 유권자의 의도와 다른 인물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깜깜이 선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국회는) 꼭 지금이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대의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발전적 논의에 힘써주기 바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 다음 주 선거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부의를 앞두고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실무진 간 협의는 계속할 방침이다. 당장 20일 오후에는 지난 18일에 이어 실무회의가 예정돼있다. 이후 실무회의 결과에 따라 21일이나 22일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하고 5당 대표가 참여하는 정치협상회의도 가질 계획이다. 하지만 여·야간 이견이 커 대표간 협상테이블이 마련되지 않거나 2차 회의처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불참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전망이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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