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의사진행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 카드를 놓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기국회 파행이 거듭될 전망이다.
앞서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의원은 선출 직후인 9일 오후 2시경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서 5가지 사안에 대해 합의했다. 그 첫 번째 사안은 10일 본회의 예산안 처리에 관한 건이다.
합의문에 따르면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예산안 심사는 오늘 당장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예결위 간사가 참여해 논의한다. 예산안은 12월 10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것과 ‘자유한국당은 지난 11월 29일 상정된 본회의 안건에 대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신청을 의원 총회의 동의를 거쳐 철회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이어 ‘두가지 합의가 선행된다면, 국회의장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본회의에 부의된 공직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사법개혁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안에 상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밖에 9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데이터3법 등 계류법안을 처리하고, 10일 본회의를 열어 밀려있는 비쟁점법안들을 처리하는데도 동의했다.
하지만 합의문은 만들어진지 4시간여 만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오후 4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 의원총회를 마치고 나오며 필리버스터 철회를 보류했다는 의원총회 결정을 전했다.
심 원내대표는 “예산안을 지금 3단 간사가 논의하고 있고, 예산안 합의처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 가지고 희망 속에서 가합의안을 작성했다”며 “예산논의가 잘 안 될 경우는 그 때 봐서 또 살펴봐야할 것”이라고 했다. 예산안 합의를 전제로 필리버스터 철회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김 정책위의장 또한 “합의문 내용을 보면 전제가 우리당(한국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을 처리한다는 조건이 있는 것”이라며 “예산안이 4+1체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우선 파악하고, 합의·처리할 부분이 있는지 검토한 다음 (법사위 및 본회의 개최 등) 다음단계를 말할 수 있다”고 말해 유보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의 결정이 알려진 직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필리버스터 철회 결정을 보류한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예산안 합의처리는 나머지 약속이행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따라서, 내일 약속대로 본회의를 열어 199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민식이법, 데이터 3법 등 비쟁점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당 신임 원내대표가 3당 원내대표 간 첫 번째 합의사항도 지키지 않은 상황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는 이후 누구와 무얼 믿고 논의해야 하는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한국당의 결정에 깊은 실망과 우려를 거듭 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