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말 끊지 마라” 재판부 “앉으라”…정경심 재판서 신경전

檢 “말 끊지 마라” 재판부 “앉으라”…정경심 재판서 신경전

기사승인 2019-12-19 15:37:31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에서 검찰과 재판부가 고성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자 양측의 갈등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 심리로 열린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사건과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 사건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검찰과 언쟁을 벌였다.

재판에 앞서 검찰은 공판준비기일에 재판부가 소송 지휘를 한 것에 대해 이의를 표시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지난 10일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록 복사가 늦어지는 것을 지적하며 “보석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이 본 재판부의 예단이나 중립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본 재판부는 그런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계기로 재판부 중립에 대해 되돌아보겠다”고 말했다. 또 표창장 위조 사건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것에 대해 검찰이 이의를 신청한 내용이 공판조서에 누락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수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이후 공판준비 절차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곧바로 검찰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법정에 출석한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은 “저희에게 직접 의견 진술을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 등 원칙에 따라 미리 제출한 의견서의 요지를 법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돌아보겠다고 말했고, 공판조서에 반영하겠다고 했다“며 고 부장검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3명의 검사가 번갈아 자리에서 일어나 “의견 진술 기회를 왜 주지 않느냐”고 항의했고, 재판부는 검사들을 향해 앉으라고 반복해 지시했다. 법정에서 이 같은 상황은 10분 가까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송인권 부장판사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고 부장검사가 “진심으로 (의견 진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재판부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강백신 부부장검사가 “이 소송 지휘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맞섰고, 재판부는 그의 말을 끊으며 “기각하겠다”고 했다. 다시 검사들은 “무슨 내용의 이의인지도 듣지 않느냐”고 항의했고 재판부는 “앉으라”는 지시로 일관했다. 이후로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시로 검찰이 이의를 제기했고, 재판부가 이를 끊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 검사는 “검찰은 단 한마디도 못하게 하고, 변호사에게는 의견서를 실물 화상기에 띄워 직접 어느 부분이냐고 묻는다”며 “전대미문의 재판을 하고 있다”고 재판부를 비판했다. 강 부부장검사도 “변호인이 말할 때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까지 하라고 하고, 검사가 말할 때는 중간에 말을 끊는다”며 “의견을 끝까지 듣고 답하는 방식으로 소송 지휘를 해달라”고 했다. 법정에 출석한 8명의 검사가 번갈아 자리에서 일어나 이의를 제기하자, 재판부는 그때마다 “검사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다툼은 검찰과 변호인 사이의 갈등으로도 번졌다. 정 교수의 변호인은 “법에 따라 이의 제기는 가능하다”면서도 “이에 앞서 재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고, 재판부가 설정한 의제에 따르는 것이 기본”이라며 “검사 모두가 오늘 재판장이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발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호인은 “30년간 재판을 해 봤지만 오늘 같은 재판 진행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고 부장검사가 “지금 변호인은 소송 수행과 관련해 발언 기회를 얻었지, 저희를 비난할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며 “저희도 재판장이 이렇게 검찰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 재판은 본 적이 없다”고 맞받았다.

이날 재판은 정 교수 변호인 측에서 명확한 의견을 내지 못한 채 공전했다. 정 교수 변호인 측이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기록 열람·복사가 늦어지는 이유가 검찰에 있는지, 변호인에 있는지 책임을 따지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향후 조 전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보다 입시비리 의혹을 먼저 심리해 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정 교수가 입시비리 의혹 관련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한 만큼 구속 기간 내에 심리를 마쳐야 한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고 부장검사는 재판을 마무리하며 “신속·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마음에서 낸 의견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깝다”며 “재판 진행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저희도 책임을 통감하고, 앞으로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사건의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검찰이 조 전 장관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재판에 넘기겠다는 뜻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재판을 마친 뒤 정 교수 변호인은 “오늘 재판 진행에 대해 검사들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변호사로서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며 “이것이 우리 사법 현실을 보여주는 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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