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재료들로 모두가 아는 맛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하지만 ‘백두산’만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을 하기 어렵다. 서사의 개연성과 중후반 급격하게 힘이 떨어지는 전개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의 이야기다. 

끝도 없이 막히는 강남역 앞 도로가 순식간에 갈라진다. 건물이 무너지고 한강은 요동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은 아비규환이다. 매일 보는 익숙한 거리에 닥쳐온 재난이 스크린에 실감 나게 펼쳐지고, 관객은 휩쓸리듯 영화에 몰입한다.

영화는 한반도를 초토화한 백두산 1차 폭발 이후,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청와대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은 백두산 폭발을 연구해 온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수립한다. 북한이 미국에 넘기기로 한 핵 기폭제를 손에 넣어 백두산 내부의 마그마방에 터뜨려 압력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전역 대기 중인 폭발물처리반(EOD) 대위 조인창(하정우)은 만삭의 아내 최지영(배수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비밀 작전에 투입된다. 임무는 북한 무력부 소속 요원 리준평(이병헌)을 만나, 핵의 위치를 알아내고 기폭장치를 정해진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백두산’은 여러모로 예상이 가능한 영화다. 제작사는 ‘신과함께’ 시리즈로 시각 특수효과(VFX)의 새 지평을 연 덱스터스튜디오이며, 제작비는 약 26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배우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등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이런 사전 정보를 더하면 거대한 규모의 오락영화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다.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백두산’은 기대 이상의 화면을 보여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다. 초반부터 압도적인 규모의 재난 연출이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구현됐다. “후반 작업에 공을 들여 공개가 늦었다”는 이해준 감독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공식대로 시작된 영화는 조인창과 리준평이 만난 이후 전형적인 버디무비로 전환한다. 남측과 북측의 요원이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만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끝내 협력한다는 흐름은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서사다. ‘백두산’도 다르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 부성애도 얹는다. 조인창은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위험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작전 투입에 동의한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리준평도 결국 하나뿐인 아이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고자 움직인다. 두 사람은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정서에 묶여 앞으로 나아간다.

‘백두산’엔 재난, 버디, 첩보, 가족, 액션 등 오락영화에 어울리는 모든 것이 등장한다.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모두 다 준비했다는 자세처럼 보인다. 배우들도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표현했다. 특히 이병헌은 자신이 맡은 역할의 무게감과 방향성을 잘 알고 능수능란하게 연기했다. 

19일 개봉. 12세 관람가.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