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2일이면 각 기업별로 최고경영자의 신년사가 나온다. 신년사는 기업의 CEO가 주주나 고객들에게 올 한해의 경영방향을 소개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융권도 매년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성명의 신년사가 발표된다. 그런데 금융권 신년사를 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신년사 내용에 매년 ‘고객중심 경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점이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무감어수(無鑑於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해 이제는 고객과 사회의 높아진 시선을 기준으로 더 높은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고객 서비스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손님중심 경영’을 강조했고,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경영 목표를 ‘120년 고객동행, 위대한 은행 도약’으로 선언하고, 고객과 함께 최고의 은행을 만들어 가겠다고 발표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고객 중심의 비즈 인프라 혁신’을 강조하며, 고객 관점의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바탕으로 디지털 혁신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밖에 무수히 많은 금융권 CEO들이 고객중심 경영을 펼치겠다고 신년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발언했던 ‘고객중심 경영’은 어떠한 결과를 내놓고 있을까.
고객중심 경영을 약속했던 4대 금융지주를 보면 핵심 자회사인 은행이 모두 고객에게 상품을 올바르게 판매하지 않아 행정 제재를 받거나 제재를 앞두고 있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신탁상품 불완전판매로 각각 기관주의와 기관경고의 징계를 받았다. 특히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판매로 당국의 중징계를 앞두고 있으며, 검찰이 관련 사항을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신한금융투자와 함께 라임사태까지 연루돼 있어 지난해 금융권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불완전판매로 손해를 본 이들에게 ‘믿은 사람이 바보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금융권은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도 고객중심 경영을 신년사의 주요 화두로 꺼내 들었다. 조 회장과 손 회장은 ‘고객 신뢰’, 윤 회장은 ‘고객중심 경영’, 김 회장은 ‘모두의 기쁨’ 등의 단어를 사용해 고객중심의 경영을 펼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뿐인 ‘고객중심 경영’ 선언이 매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금융사들은 그동안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고객중심 경영을 펼치지 않아도 충분히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소위 ‘이자장사’로 불리며 앉아서 하는 영업만으로도 고객들이 필요에 따라 금융회사를 찾아온 것.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이러한 금융회사들의 독점적 지위도 흔들리는 시대가 왔다. 카카오와 토스 등 IT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에 따라 고객의 선택권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고객중심 경영’ 약속이 실천을 통해 행동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는 시대가 됐다.
실천 없는 약속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올해는 금융사들이 고객 신뢰를 잃는 순간 시장에서 도퇴될 수 있다는 각오로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한 해를 보내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금융회사들의 내년 신년사에서는 ‘고객’이라는 단어가 빠져도 무리없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