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가유공자 심의 결과도 행정소송 대상” 첫 판결

법원 “국가유공자 심의 결과도 행정소송 대상” 첫 판결

기사승인 2020-01-03 10:01:31

국가보훈처에 유공자 서훈 추천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사람은 소송을 통해 시비를 다툴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11부(김동오·박재우·박해빈 부장판사)는 A씨가 “독립유공자 포상 추천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이처럼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7년 10월 국가보훈처에 아버지를 독립유공자 포상 대상자로 추천해달라고 신청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구금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국가보훈처는 공적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A씨의 신청을 거부했다. A씨는 추천 거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각하됐다. 각하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소송이나 청구에 대해 재판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조치다.

반면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보훈처의 추천 거부 행위를 행정소송 대상으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보훈처의 행위 자체가 훈장을 수여 할지 결정하지는 않지만, 추천을 거부함으로써 국무회의와 대통령의 판단을 받을 기회를 빼앗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로 인해 독립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을 기회를 잃고 독립유공자법에 따른 보상을 받을 길도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이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행사”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보훈처의 심의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사법부의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추천 거부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공적심사위원회나 보훈처가 사실관계를 오해하거나 비례·평등의 원칙을 어기는 등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경우에도 신청인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법한 심사가 이뤄진다면 이를 다툴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A씨의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 서기로 근무해 행적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는 정당한 추천 거부 사유라고 봤다. 재판은 A씨의 패소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그동안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 추천 거부에 불복해 제기된 소송들을 일관되게 각하해 왔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서훈 추천 절차는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훈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원수의 통치행위로, 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었다. 아울러 법원은 국가보훈처의 추천 거부 역시 대통령의 결정단계로 가기 위한 절차 중 하나로 간주했다. 이는 국민의 권리·의무에 변화를 주는 ‘행정처분’이 아니라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A씨 소송이 각하되지 않은 것은 이 같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최초로 반기를 든 사례다. 

한성주 인턴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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