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후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도시화 현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에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해야할 선거의 바탕인 선거구 통폐합 문제가 선거 때만 되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다. 21대 총선도 예외는 아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10일 서울 관악구 중앙선관위 관악청사에서 4·15 총선 선거구 획정을 위한 정당 의견을 청취했다. 총선을 96일 앞두고서다. 문제는 아직 선거구 획정을 위한 기준조차 국회가 마련하지 못하고 첨예한 의견대립만 모인다는 점이다.
당초 국회는 지난해 3월15일까지 선거구를 어떻게 쪼개고 붙일지 정할 시도별·지역구별 인구수 기준인 ‘선거구 획정안’을 획정위에 제출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획정안은 제출돼지 않았고, 획정위는 순서를 바꿔 지역과 정당 의견을 우선청취하는 방식으로 편법을 써야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날 중앙선관위에 모인 정당 대표들은 ‘호남’과 ‘수도권’ 의석을 두고 강하게 충돌했다. 자유한국당을 대표해 참석한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회의 시작도 하기 전에 선전포고부터 했다.
국회에서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란 이름으로 선거법 개정안을 불법적으로 처리했지만 선거구 획정만은 불법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엄포였다. 이어 수도권 선거구 통폐합 반대와 호남 선거구 축소를 주장했다.
수도권의 경우 인구대비 의석수가 가장 적은 곳으로 수도권을 통폐합하자는 주장은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것이며, 비례성 원칙에 부합하려면 인구대비 의석수가 포화상태인 광주와 전북, 전남 순으로 의석을 하나씩 줄여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4+1 협의체’ 소속 정당들은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시화로 인해 인구가 줄어든 농·산·어촌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야하는 만큼 하한선을 조정해 이들 지역구는 유지하고 수도권 선거구를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윤재설 정의당 정책연구위원은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이 보장되도록 선거구가 획정돼야한다”고 말했다. 이관승 민주평화당 사무총장도 “김제·부안은 인구가 하한선에 약간 미달하지만 농어촌이 어우러졌다”면서 “지역 대표성 확보를 위해 지역구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기영 민중당 민중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영호남은 인구 기준으로 명확히 분구하고, 수도권은 우선 통폐합해야 한다”면서 “생활권을 존중하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선거구를 정하는) 게리맨더링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세환 선거구획정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획정안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면서 “선거 100일이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 획정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점은 매우 유감”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획정위가 지난해 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만18세로의 선거권 확대 등 바뀐 선거법을 반영한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 조금이라도 유권자와 후보들의 권리를 확보하려면 국회가 조속히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해야하는 상황이다.
이에 획정위 내부적으로는 획정안 제출시기의 마지노선을 2월15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획정위 관계자는 “2월26일 국외 거주자명부 작성이 이뤄져야한다”면서 “통상 선거구 획정에 2달이 걸린다. 최대한 단축해도 열흘은 걸린다”고 조속한 획정안 마련을 희망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