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관계부처는 ‘아동이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이중 주요하게 검토된 내용 중 하나가 민법 제913조의 ‘친권자의 징계권’ 개정이었다. 문제는 속도다. 개정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민법 915조의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은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 조항은 1958년 민법 제정된 이래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우리사회에서 아동학대가 근절되어야 할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아직 우리 법은 보호자의 자녀 체벌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지난 2018년 기준 아동학대 발생장소 중 80.3%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고, 학대행위자 중 부모에 의한 학대발생이 76.9%에 달했다.
민법 915조의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 삭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조항의 내용은 아동복지법 제5조2항과 부딪친다. 동법조항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민법 913조는 보호자의 교양 의무를 명시한 915조와도 충돌한다. 비단 법조문의 충돌에 우선해 친권자의 징계권이 어린이 권익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관련 시민단체의 일관된 견해다.
관련해 지난 13일 국회에서는 민법 915조 삭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어린이들이 직접 나왔다. 임한울(9)군은 “맞아도 되는 나이는 없다”고 반박했고, 최서인(13)양은 “아동의 목소리를 기울이라”며 “체벌은 어린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이다”고 말했다.
정태영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은 우리사회가 체벌을 정당화해왔다고 비판했다. 정 사무총장은 “대다수 아동학대 사건이 체벌로 시작한다”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법 915조가 부모가 자녀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여지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문제조항”이라고 규정했다.
홍창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부회장은 “56개국이 아동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면서 “가벼운 체벌에서 시작한 행위가 극심하고 잔혹한 학대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는 민법 915조의 삭제는 이제 더 이상 미뤄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웅철 굿네이버스 사무총장도 조문의 삭제 당위성을 적극 피력했다. 그는 “지금도 체벌로 고통 받는 아동들이 있다”며 “정부는 민법 915조의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건 전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장은 ‘친권’의 개념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아동학대 현장에서 상담원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자녀의 훈육을 못하게 하면 너희들이 내 아이들을 키워 줄 거냐’는 반문”이라며 “이는 아동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여기는 그릇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아동이 어른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편견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폭력은 상대가 굴복할 때까지 행해지는 것”이라며 “이는 인권과 충돌하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근대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부모-자녀 관계를 종속적 관계로 이해해 징계권을 명시하는 민법 915조는 구시대의 유물로 민법 913조에 보호자의 교양 의무가 있으므로, 915조가 없어도 훈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