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블랙머니’를 통해 ‘론스타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행동주의 성향의 사모펀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행동주의 사모펀드란 기업의 주식 매수를 통해 주요주주로 등재된 후 경영권 참여, 인수합병,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보유 주식의 가치 상승을 적극적으로 유도해 수익을 누리는 집합투자증권(펀드)를 의미합니다.
1992년 자본시장이 개방된 이후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1500조원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8년 초(1월 3일 기준) 72조원 대비 약 2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자본시장의 규모가 커진 만큼 외국계 투기자본, 행동주의 사모펀드(PEF)의 비중도 조금씩 커진 상태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론스타를 비롯해 SK소버린,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같은 외국계 투기자본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가 대한항공 지주사 한진칼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면서 한진그룹 일가를 제외한 최대주주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행동주의 펀드를 소재로 삼은 영화, 드라마 등이 종종 나오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국내에서는 론스타 자본의 ‘민낯’을 폭로한 영화 ‘블랙머니’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일본 경제 드라마 최고봉으로 불리는 ‘하게타카’가 2000년대 초반 일본국영방송 NHK에서 방영했고, 지난 2018년 리메이크 버전도 소개됐습니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투명한 건전성 제고 보다는 차익 실현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는 선악의 개념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 사모펀드는 부실화된 기업을 정상화시키는데 도움이 된 적이 있기 때문이죠.
◆ 블랙머니, 론스타 사건 재조명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블랙머니’는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론스타가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하고, 대규모 시세차익을 남기며 하나금융지주에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한 사건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헐값으로 사들여 큰 논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 시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금융당국과 검찰의 전방적인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애초 론스타가 매각하려는 시점(2006년) 보다 4년 이후에 엑시트가 가능해졌고, 론스타는 이를 빌미로 한국정부에 46억9000만달러(약 5조1000억원)에 달하는 ISD(투자자정부소송)를 제기했습니다.
영화 내용에서는 실제 사건을 주된 골자로 삼고 있지만 일부 내용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각색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관련 수사를 맡은 검찰총장이 외압에 의해 경질된 일은 없으니깐요.
하지만 여전히 영화에서 제기하는 여러 의혹들은 실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당시 론스타는 사모펀드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골프장과 같은 비금융 계열사를 지니고 있던 ‘산업자본’으로 분류됐습니다. 따라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원칙적으로는 적용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2년간 하지 않은 것은 의문점으로 남습니다. 때문에 모피아, 검은머리 한국인이라는 단어는 이 시기에 등장하죠. 특히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헐값 매각했다는 논란에 법정 공방에 휘말렸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 하게타카, 선악 경계 넘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지난 2007년 일본 국영방송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하게타카’(ハゲタカ)는 일본 경제 드라마 중 최고봉으로 불리는 작품입니다. 이 드라마는 지난 2018년 아사히TV에서 리메이크 버전으로 방영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리메이크 버전에는 한국 팬들에게도 잘 잘려진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의 히로인 사와지리 에리카가 출연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게타카는 ‘우리나라 말로는 콘돌(독수리)을 뜻하며, 말 그대로 썩은 시체를 뜯어먹는 ’벌처펀드(Vulture fund)‘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부실기업의 채권을 인수해 최대한 수익을 뽑은 뒤 고가로 팔아넘기는 사모펀드라는 뜻입니다.
버블경제 이후 부실해져 가는 일본 기업을 잇달아 사들이는 외국계 펀드 매니저 와시즈와 일본 기업을 지키려는 엘리트 은행원 시바노의 대립이 주요 줄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하게타카로 불리는 행동주의 펀드를 악(惡)으로 규정짓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사모펀드가 인수해 적자기업이 흑자로 돌아서게 되는 것을 그려놓습니다.. 게다가 오너 일가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모럴헤저드에 대해서도 드라마를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지분을 인수한다고 해서 그것이 늘 부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국내 첫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이라는 ‘문제적 오너일가’로 악명 높은 한진그룹(한진칼)의 지분을 사들여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또한 공모 형식의 행동주의 펀드 ‘KB주주가치포커스증권투자신탁’(KB자산운용)은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에 주주가치 재고를 위한 공개 주주서한을 보내 큰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지난 2018년 4월에는 골프존에 주주총회 결의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내 승소하기도 했다.
게다가 행동주의 펀드가 최대주주가 될 경우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OB맥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모펀드가 투자 이후 비용을 절감하는 구조조정 보다 공격적인 투자 및 운영방법 개선을 통해 회사의 벨류에이션을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SK 역시 소버린의 공격적인 태도가 경영권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지만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오히려 사모펀드의 행동주의 개입이 지배구조 개편에 역설적인 ‘보약’으로 작용했던 겁니다.
아울러 국내 진출한 외국계 사모펀드가 무조건 차익을 남기지는 않습니다. 그 악명높은 엘리엇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 합병 이슈에 파고들었지만 별다른 이익을 남기지 못했고, 이후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 지분 1조원을 사들여 경영권 간섭을 시도했으나 현대차그룹주의 주가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현재 ‘존버’(장기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은어)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