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재판에서 채용비리 의혹이 일부 사실로 인정된 신한은행이 채용 과정에서 당시 현역 국회의원 등 유력인사와 관련 있는 지원자들을 ‘특이자’로 별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평가점수를 올리거나 탈락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불합격을 합격으로 뒤바꿨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22일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 등 신한은행 채용 관련자 7명의 1심 판결에서 2013년 상반기부터 2016년 하반기까지 '특이자'와 '임직원 자녀' 등 20여명의 합격 여부가 기존 채용 기준과 달리 결정됐음을 보여주는 신한은행 내부 문건을 판단 근거자료로 제시했다.
앞서 검찰은 조 회장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신한은행 인사부가 관리한 '특이자'를 "국회의원, 유력 재력가, 금융감독원 직원 등 신한은행의 영업 및 감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 사람이 신한은행 신입행원 채용 절차에 지원한 사실을 알린 지원자"로 정의했다.
신한은행에는 공개채용 때마다 1만명 이상이 응시한다. 인터넷 취업포털에 지원서를 낸 지원자들은 서류전형과 1·2차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로 선발된다.
서류전형 단계에서는 출신 학교·학점과 지원자 연령 등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우선 분류해 탈락시키는 이른바 '필터링 컷'이 적용됐으며, 면접 과정에서는 면접관들의 평가에 따라 지원자들에게 'AA'부터 'DD'까지 등급이 부여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이자' 등 일부 지원자의 점수가 중간에 인위적으로 변경됐다고 판단했다.
2013년 하반기 공개채용에 응시한 A씨는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과 관련된 인물로 '특이자' 명단에 들었다.
이 문건에서 A씨는 "thru 김재경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 표시됐는데, 바로 옆에는 A씨가 김 의원의 지역구인 경남지역 한 언론사 사주의 자녀라고 적혀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애초 A씨는 연령 초과와 금융 관련 자격증이 없는 등의 이유로 '필터링 컷'에 걸려 '전형결과'란에 '×'가 표기됐다. 그러나 이는 며칠 사이에 '○'로 바뀌었다. 면접 등급은 당초 'DD'였으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서 'BB'로 상향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서진원 당시 행장이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격 이외에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에 있는 인적관계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합격 여부를 결정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방해죄를 인정했다.
2014년 상반기에 지원한 B씨는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영주 의원과 관련성이 있는 '특이자'로 분류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문건에는 B씨가 김 의원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의 구의원 자녀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B씨는 면접에서 'CD' 등급을 받아 원래 불합격 대상이었으나 실무면접 합격자 명단에 포함됐다. 재판부는 '특이자'와 임직원 자녀의 전형 결과를 경영진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수정됐다고 판단했다.
김재경 의원과 김영주 의원은 당시 은행권 감독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다. 다만 해당 의원들은 청탁 의혹을 부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재판부는 신한은행이 2016년 하반기까지 별도로 관리한 '특이자'에 예금 유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립대 총장, 대기업 간부 등과 관련 있는 지원자들이 포함됐다고 적시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