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가장 신경 쓴 건 거리감…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길”

[쿠키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가장 신경 쓴 건 거리감…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길”

[쿠키인터뷰]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 “가장 신경 쓴 건 거리감…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길”

기사승인 2020-01-29 07:00:00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가져왔지만, 그 안에 갇혀있지 않고 확장성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적으로 확 펼쳐보고 싶었죠.”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은 2020년 설 연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은 영화다. 4일 동안 하루 50~80만 관객을 모으며 일주일도 안 돼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같은 날 동시 개봉한 세 편의 영화(‘히트맨’, ‘미스터 주: 사라진 VIP’, ‘스파이 지니어스’)를 제치고 거둔 성과다.

영화가 개봉하기 하루 전(21일)에 만난 우민호 감독은 초조해보였다.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짧은 문장으로 요약되는 실화 소재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산의 부장들’ 이전에 세 번째 작품인 영화 ‘내부자들’에서 큰 성공을, 네 번째 작품인 영화 ‘마약왕’으로 큰 실패를 맛본 것 역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요소였다. 우 감독은 차분하게 자신이 영화에 담으려고 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 ‘거리감’

“저와 배우들이 가장 신경 쓴 건 거리감을 유지하는 거였어요. 인물의 내면을 들춰보되 어떤 정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남산의 부장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왜 그걸 쫓아가느냐’는 거예요.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사건을 조명하는 얘기거든요. 전 끝까지 미스터리하게 남길 바랐어요. 그에 대한 답은 관객들 스스로가 찾아가길 바랐죠. 저한테도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어떤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 ‘복합적 요소’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됐다고 얘기해요. 권력투쟁이 될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을 수도 있고, 사회적인 공명심이나 정의가 될 수도 있죠. 또 상사와의 불화나 배신, 혹은 충성에 대한 것이 될 수도 있고, 권력욕이 될 수도 있어요. 전 어떻게 보면 개인 간 감정 관계의 균열과 파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편집만 8개월’

“편집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영화가 어떤 결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어떤 순간에는 거리감을 유지해야하고 어떤 때는 쓱 빠지는 것처럼 해야 했어요. 편집 기사님이 꼼꼼하게 해주셔서 그나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닮음’

“캐스팅 기준은 실제 인물과 비슷한 외모가 아니었어요. 저는 닮음을 연기하는 배우가 필요했어요. 보통 ‘잘생김’을 연기한다고 하잖아요. 닮지 않았지만 닮음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 그 인물을 설득할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했어요. 운 좋게도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 생각했던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어요. 2016년 1월에 판권 구입했는데 그때부터 이병헌 배우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 이병헌 배우가 이 작품을 안 한다면 엎을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캐스팅했는데, 다행히도 흔쾌히 받아들여줬어요. ‘마약왕’에서 만난 이성민 배우와 이희준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곽도원 배우는 ‘곡성’에서 강렬한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이 역할을 제대로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요.”


△ ‘데보라 심’

“데보라 심은 어떻게 보면 뻔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데보라 심의 존재감이 있어야 하거든요. 김소진 배우는 ‘마약왕’에서 같이 작업했을 때 훌륭한 연기와 좋은 에너지를 보여줬어요.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제가 제안했고 받아들여줬죠. 배우가 현장에서 정말 힘들어했어요. 전형적인 캐릭터인데 뭔가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하니까요. 그 지점을 배우가 많이 고민하면서 결국해낸 것 같아요.”


△ ‘클로즈업’

“김규평(이병헌)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아요. 억누르고 있다가 한방에 터지는 캐릭터죠. 그러면서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하잖아요. 조금씩 삐져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내면의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는데 이병헌 배우가 정말 잘 해줬어요. 그래서 클로즈업을 많이 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김규평이 궁정동에 잠입하는 순간이에요. 카메라가 시골 선생님처럼 담을 넘어가는 모습을 팔로우만 해주죠. 배우 얼굴은 보이지 않고 분위기와 행동만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얼굴이 안 보이는데도 인물의 내면과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 ‘구두’

“박용각 부장(곽도원)은 버려진 사람이에요. 너무도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크고 집착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1인자가 다시 불려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전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규평과 박용각이 같은 인물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는 선후배지만 친구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1인자에게 쓰임을 당하고 버려지는 2인자의 공동체적 비극 아닐까요. 같은 운명을 타고난 거죠. ‘너도 나처럼 된다’는 대사도 있고요. 두 사람이 구두를 잃어버리는 건 일부러 연출한 거예요. 당시 김재규 정보부장이 구두를 잃어버린 건 실제라고 해요.”


△ ‘프렌치 누아르’

“따뜻한데 차가운 느낌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느와르 분위기를 세게 밀어붙이는 건 프렌치 누아르에서 참고했어요.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그림자 군단’ 같은 영화요. 영화에 프랑스 장면이 있어서 장소 헌팅을 했더니 예전에 영화에서 봤던 풍경이 있는 거예요. 카메라를 놓고 자연스럽게 찍어도 그 분위기가 나오는 거죠. 또 좋아하는 작가이고 대문호이기도 한 존 르 카레의 작품에서도 영향을 받았어요. 그의 작품을 보면 냉전 시대의 정보 요원들이 겪는 사건을 그리는데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을 쫓아가요. ‘남산의 부장들’도 10·26 사건을 쫓아가기 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시대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 ‘방돔 광장’

“미국 워싱턴에선 3회 차, 프랑스 파리에선 10회 차 정도 찍었어요. 해외 로케이션으로는 처음 찍어봐서 힘들었어요. 한국보다 더 타이트한 상황이었거든요. 미국 스태프도 훌륭했지만, 프랑스 현지 스태프들이 만족스러웠어요. 프람스 방돔 광장은 섭외하기 쉽지 않은 곳이에요. 유동인구도 많기 때문에 프랑스 자국 영화도 거기서 찍은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섭외해서 현지 스태프도 놀랐어요. 현지 로케이션 매니저에게 물어보니까 처음엔 파리시와 조율이 안 됐다가 나중에 조율이 됐다고 해요. 첫째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타기도 했고,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다고 했어요. 또 그 장소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다루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해요.”


△ ‘탱크’

“실제로도 탱크를 서울로 가져왔다고 해요. 저도 ‘그게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장면은 서울에서 찍었는데 서울로 탱크를 가져오기가 힘들어요. 허가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영화 촬영이라고 해도 좀 그렇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나중에 허가가 나서 큰 트레일러에 탱크를 실어서 왔어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더라고요. 정말 지축을 울렸어요.”


△ ‘뒷이야기’

“관객들이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배우들의 명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 사건에 있었던 인물들의 다른 모습들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사건에 대해 아는 분들은 알잖아요. 모르는 사람들도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따라올 수 있어요. 영화에선 10·26 사건까지 다루지만, 그 이후도 상당히 드라마틱하죠. 시네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서 그 뒷이야기를 붙임으로서 영화가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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