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보통 암의 크기가 크고 멀리 있는 다른 장기에 전이돼 있는 암을 4기암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 불가능한,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말기암’과 혼동해서 쓰지만 4기암은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많이 진행했기 때문에 치료 성적은 당연히 좋지 않다. 보통 5년 생존율이 5% 정도이고 갑상선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은 40~70%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암 사망 1, 2위인 폐암과 간암은 4기의 생존율이 매우 낮다. 폐암의 5년 생존율은 약 8%, 간암은 0%에 가깝다. 그나마 최근 면역항암제 등으로 일부 폐암환자는 4기에서도 20%가 넘는 5년 생존율을 보인다. 안타깝지만 간암은 그렇지 못하다. 4기 간암에서 전신항암화학요법,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모두 5년 생존율에는 별 영향이 없어 보인다.
효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생존기간을 5년까지 늘리지는 못한다. 최초의 표적항암제인 넥사바가 나온 지 10년이지만 겨우 생존기간을 3개월여 늘리는 정도이고 후속 약들도 이를 못 넘어 비슷하거나 낮다. 특히 최근 여러 암에서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는 면역항암제도 간암에서는 힘을 못 쓰고 있다. 4기 암에서 쓰는 항암제의 효과는 ‘5년 생존율’을 비교할 수 없어서 보통 전체생존기간(overall survival, OS)을 비교하는데 허가 받은 1차 간암 치료제들은 중간값이 10개월 정도이고 가짜 약을 쓴 환자는 7개월 정도이다.
그렇다고 이런 암환자 치료에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생존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고통을 줄이기 위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의료진은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잘 모르는 환자들은 어떻게든 완치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건강한 보통 사람에게 살기 위해가 아니라 남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치료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이 둘 사이에서 오는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리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나온 후 최소한 글리벡을 쓸 수 있는 백혈병은 더 이상 죽는 병이 아니라 만성질환이 됐다. 하지만 급성골수성백혈병은 여전히 1960년대에 시작한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고 있다. 초기에는 생존율이 10%가 채 되지 못했지만 서서히 발전해 지금은 50% 정도에 이른다. 지난 반세기 이상 백혈병을 연구하고 싸워온 사람들이 없었다면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만성질환’처럼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항암제의 역사는 수십 년간 느린 진보와 몇 번의 높은 도약이 있었다. 진보에 힘쓰지 않으면 도약도 오지 않는다.
간암은 서구에서는 드문 암이다. 남자에서 더 많이 생기는데 우리나라는 남자에서 네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지만 미국은 아홉 번째, 영국은 10위 안에도 들지 않는다. 간암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풍토병이다. 아무래도 서구가 주도하는 신약 개발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간암은 엄격한 급여기준 때문에 효과가 낮은 사람들만 항암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 간암에서 항암제 처방을 제안 받으면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연구에서는 항암제를 썼을 때 전체생존기간이 10개월이지만 연구에 따라서는 20개월 이상을 생존한다. 중간값이니 절반의 환자는 이보다 오래 생존한다.
지난 10년 동안 유일했던 먹는 간암치료제는 수족피부증이라는 부작용이 문제가 되었다. 70% 정도가 겪고 20%는 이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한다. 효과는 낮은데 큰 부작용이라니. 다행히 작년에 건강보험 적용이 된 렌비마는 이 같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어떤 교수님이 ‘환자들이 감기약 복용하듯 한다’고 할 정도다. 4기 암 환자가 항암제를 쓰는 이유는 생존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유지하고 가족들과 더 오래 생활하고 삶을 정리하기 위한 기회를 주는 것도 항암제의 중요한 역할이다. 부작용이 적어 더 높은 삶의 질을 가질 수 있다면 그만큼 효과가 있는 것이다.
비싸고 효과 낮은 항암제를 허가하고 급여 범위를 정할 때 엄격한 기준을 갖는 것은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을 관리해야 하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렌비마는 치료에 실패했을 때 그 다음에 쓰는 모든 약과 시술이 보험적용 되지 않고 있다. 보험적용이 되면 비용의 5%를 부담하니 같은 비용이라도 환자는 스무 배를 더 부담해야 한다. 사실상 모든 치료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기 위해서라지만 생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들이 더 있는데 바로 임종을 준비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국내 간암 생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 세계 간암 치료를 선도하는 우리나라라면 다른 나라에서 급여를 인정하고 있는 약과 시술은 우리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부작용이 더 적고 삶의 질을 더 개선하고 추가되는 비용도 없다면 더욱 말이다.
-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