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그 이름, 계모

[친절한 쿡기자] 그 이름, 계모

기사승인 2020-06-10 06:05:00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그거 알아요? 동화에 나오는 계모는 다 못됐어. 왜, 왜 다 못됐어? 이을 계(繼), 어미 모(母). 엄마를 잇는 엄마. 근데 다 못됐어”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하이바이마마’에 나온 대사입니다. 극 중 여섯 살 딸을 키우는 엄마 오민정이 술에 취해 괴로워하며 뱉은 말이죠. 사실 딸은 자신의 남편과 사별한 전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딸에게 자신은 계모인 겁니다.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과 마찬가지로 오민정 역시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유치원 학부모들의 태도에 힘들어합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딸을 기르지만, 타인에게는 ‘그래도 새엄마’일 뿐이었죠. 이렇게 계모와 엄마라는 낱말 사이에는 대지보다 넓고, 심연보다 깊은 간극이 있습니다.   

잠시 계모라는 말을 생각해볼까요. ‘나쁜 새엄마’ ‘차별’ ‘구박’ 등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만 나열해도 부정적 뜻을 담은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관념에 사로잡힌 이유에는 인이 박이도록 계모를 나쁘게 그려 놓은 미디어의 탓이 가장 큽니다. 온갖 집안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던 신데렐라, 산비탈 자갈밭 김매기·구멍 난 독 물 채우기 등 히어로 영화 주인공이 와도 해낼 수 없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던 콩쥐,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 심지어 누명을 쓰고 생을 마감했던 장화홍련까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질투, 분노, 열등감, 허영 등에 눈먼 계모들이 있었습니다. 계모 뒤에 ‘학대’라는 표현이 따라붙은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은 일이겠죠. 

최근 동거남의 아들을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둬 결국 숨지게 한 천안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과거 장기파열까지 이르는 무자비한 폭행으로 의붓딸을 살해한 칠곡 사건,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에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이를 폭행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울산 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들 역시 계모의 이름에 굴레와 족쇄를 채웠습니다. ‘계모는 어쩔 수 없다’는 손가락질도 여전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된 통계상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는 계모나 계부보다 친부모가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천안 아동학대 사건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을 기억합니다. 본인을 재혼가정 계모라 소개한 작성자는 “새엄마인 내가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매일 같이 고민한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이런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면서 “많은 계모, 계부들이 자녀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학대 사건들로 우리를 향한 사회적 시선이 얼마나 더 매서워질지 생각하면 우울하다”고 털어놨습니다. 

‘세라 부시 존스턴’, 1816년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한 후 재혼해 9살 즈음의 남매를 키우게 된 계모의 이름입니다. 사랑으로 가정을 일군 것은 물론 헌신적인 뒷받침과 교육으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죠. 그리고 그가 내린 삶의 자양분을 바탕으로 세상에 자기 뜻을 피워낸 사람이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오늘의 나, 나의 희망, 이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의 사례만 봐도 계모에 대한 편견은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고일 뿐입니다. 이제는 그 색안경을 완전히 벗어버릴 때가 왔습니다.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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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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