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에 부탁해] 낙태죄·양육비·돌봄까지… 여가위 기다리는 숙제들

[21대에 부탁해] 낙태죄·양육비·돌봄까지… 여가위 기다리는 숙제들

② 6개월 남은 낙태죄 개정시한… 양육비 이행 수단·온종일 돌봄체계 마련 어떻게?

기사승인 2020-06-10 03:01:00

[편집자 주] 제21대 국회의 시작은 일견 순조롭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상임위원장을 두고 벌어진 여야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혹자는 정치 혐오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민주주의 그리고 삶을 말하려 한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법이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입법부, 한국 민주주의의 심장, 국회(國會)의 시작은 으레 한바탕 소동을 동반하지 않던가. 쿠키뉴스는 우리 삶과 직결되는 보건의료, 복지, 여성, 가정, 청소년을 주제로 새로운 시리즈 <21대에 부탁해> 시리즈를 시작한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21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는 바쁜 일정이 예정됐다. 여성·가족 분야에서 발생한 문제들 가운데 20대 국회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여가위의 여정 앞에 산적한 과제들을 짚어본다. 

▷낙태죄 폐지= 마감 기한이 촉박한 문제는 낙태죄 손질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판결했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에 위배되는 특정 법률을 즉시 폐기하지 않고, 개선할 수 있도록 시한을 정하는 조치다. 법률 공백으로 사회 혼란이 발생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21대 국회가 앞으로 6개월간 법 개정에 실패하면, 대체법이 미비한 상태에서 낙태죄 관련 조항도 그대로 효력을 잃는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1년이 넘도록 낙태죄 개정 문제는 진척이 없었다. 여성·인권 시민단체가 연합해 조직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는 지난 4월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에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모낙폐는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 1일 성명문을 통해 “20대 국회가 낙태죄 문제 해결을 결국 회피했다”며 “국회는 12월31일까지 여성의 성·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대안적 법안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는 형법의 두 가지 조항을 손봐야 한다. 현행 형법 269조 ‘자기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형법 270조 '업무상 동의낙태죄'는 의사·한의사·조산사 등 의료진이 임신한 여성의 동의를 받아 낙태시술을 할 시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정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법률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개선이 필요한 법률도 있다. 낙태죄 처벌 예외 사유를 나열한 모자보건법 14조다. 해당 조항은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사유가 있을 시 의사가 임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즉, 학업·직장생활·양육능력 등도 낙태 사유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 논의가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 최규진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법률 조항에서 문구 몇 개를 바꾸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차순위로 치부했던 종전의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임신 중지를 범죄로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임신 중지를 안전한 방법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시급히 토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육비 이행= 양육비를 둘러싼 갈등도 21대 국회로 넘어왔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양육비 이행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했던 양육비 이행법 개정안에는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형사처벌 ▲인적사항 공개 ▲출국금지 ▲운전면허 취소 등의 조치가 담겼다.  이 가운데 운전면허 취소 조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하며 삭제됐다. 지난달 20일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에 따르면 가사소송법에 따라 감치명령 결정을 받았음에도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은 운전면허 정지처분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자동차를 생계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이 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양육비 미이행 피해자 단체 양육비해결모임(이하 양해모)은 보다 강력한 양육비 이행 수단을 마련해줄 것을 21대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양육비 채무자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고, 생계곤란에 처하는 상황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해모는 지난 4월16일 총선 직후 양육비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선인 32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21대 새로운 국회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육비 이행 문제는 지난해 ‘배드파더스’에 대한 재판을 계기로 본격 공론화됐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이행을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 조직이다. 이들은 지난 2018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양육비 채무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는 지난해 1월 15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배드파더스의 활동은 비방 목적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으며,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게시된 이들은 스스로 명예훼손의 위험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이준영 변호사는 “도움과 지원 수준이 아닌, 억제력 있는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양해모를 도와 헌법재판소에 양육비 이행제도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지난해 양육비 미이행 문제에 대해 많은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지만, 해결책이 도출된 사안은 아무것도 없다”며 “우선, 성범죄자와 임금체불 사업자처럼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개되도록 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양육비를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제도가 있지만, 아직까지 공고화되지 않은 수준”이라며 “여성가족부 산하에 운영 중인 양육비이행관리원도 강제력을 행사할 역량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양육비 이행률은 35.6%였다.

▷돌봄 공백 해결=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돌봄 공백 문제도 해결이 시급하다. 지난 1월20일 국내에 출몰한 코로나19가 점차 확산되자, 2월23일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 최초로 휴업령이 내려졌다. 이후 지역감염이 가속화하면서 개학은 4차례 연기됐다. 지난 5월4일부터 고3을 시작으로 순차적 등교가 예정됐지만, 이마저 일주일 연기됐다. 전학년 등교가 마무리된 것은 이달 8일. 전국의 아이들이 집에서 한학기를 보낸 것이다. 감염의 위험으로 학원마저 문을 닫자 맞벌이 가정에서는 자녀를 돌보기 위해 연차를 소진하는 ‘돌봄 대란’이 발생했다.

그동안 20대 국회에서는 학령기 아동·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돌봄교실, 유아동을 위한 아이돌봄서비스 강화, 돌봄수당 지급 등을 내세운 돌봄체계 구축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가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해 초등단계 학령기 아동 돌봄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구상의 ‘온종일 돌봄체계 특별법’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1대 국회에서는 개원과 동시에 돌봄 공백 해소를 약속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1일 미래통합당 의원 103명 전원이 이름을 올린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근로자의 가족돌봄휴가 사용 기간을 충분히 보장해, 돌봄 공백 발생을 방지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이어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온종일 돌봄체계 특별법이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다시 발의되기도 했다.

도근희 구미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나 학교 방과 후 교실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체적 돌봄 기능도 배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센터장은 여가부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돌봄공동체 자문단의 자문위원이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긴급돌봄교실을 확대해 돌봄 공백을 해결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지속가능한 돌봄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돌봄 공동체가 형성돼야 한다”며 “육아와 돌봄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지 않도록 인식개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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