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방송의 책임과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17일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카메라 안에서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동안, 카메라 바깥 현실의 삶을 생각해봤기 때문입니다. ‘빌런’으로 낙인찍힌 사장님들의 일상은 얼마나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날 방송에선 2주간 예고편으로만 등장해 시청자의 애를 태웠던 서산 해미읍성 돼지찌개집의 사연이 전파를 탔습니다. 긴급 점검을 위해 식당을 찾은 제작진은 찌개에서 올라오는 고기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고, 심지어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푸근한 미소로 손님들을 맞던 사장님은 어쩐 일인지 싸늘한 표정으로 변명만 늘어놓더군요. 사장님은 후에 제작진을 통해 “내가 주방을 지켜야 하는데 직원에게 시켰다.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안다”며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뛰어난 요리 솜씨와 싹싹한 태도로 ‘서산 장금이’라고 불리던 사장님은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렸을까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름의 유추는 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 방송을 거쳐 간 여느 식당이 그랬듯 돼지찌개집 앞에도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고 합니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해야 하니, 고기를 충분히 볶은 뒤 찌개를 끓여내는 예전 조리법을 유지하기 어려웠겠죠. 대신 빠르게 찌개를 내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탐구했을 겁니다. 고기와 국물을 따로 만들어두는, 지금의 조리법 말입니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테니 우리가 이해하자’는 게 아닙니다. 돼지찌개집을 맛집으로 소개했던 백종원이 변한 사장님의 모습에 실망한 건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사정을 손쉽게 재단해 손가락질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권위자(백종원)의 말에 기대 누군가를 비난할 판을 깔아줘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몇 줄의 말로 정의될 수 없듯이, 돼지찌개집 사장님이 돌변한 이유 또한 몇십 분의 방송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돈에 눈먼 사장님들’ ‘그동안 다 연기였나’ 같은 기사 제목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혹, 홍제동 팥칼국수집을 기억하시는지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했다가 불성실한 태도로 도마 위에 올랐던 이 식당 사장님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방송 이후 협박과 폭언 등에 시달렸다고 털어놨습니다. 물론 이것은 협박과 폭언한 사람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 제작진은 과연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빌런’으로 상정한 뒤, 이 ‘빌런’이 업계 권위자에게 혼나고 망신당하는 모습을 흥행 동력으로 삼아온 것에 대한 제작진의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시 묻습니다. 방송의 책임과 역할은 어디까지일까요.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이 끝나면 다른 식당을 찾아 골목을 떠나지만, 식당 사장님들의 삶은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계속됩니다. ‘방송 아이템’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식당 사장님들을 인식하는 것. 지금 ‘백종원의 골목식당’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입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