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을 유희 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비동의 불법촬영물 ‘몰카’의 제작자·소비자 들이다. 이들의 범죄는 단순히 유희로 끝나지 않는다. 불법촬영물을 사고 팔면서 거대한 암시장을 형성했다. 불법촬영물 삭제지원 업체와 결탁해 카르텔을 구축하기도 했다. 수사기관의 소극적 대응,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은 이들의 범죄를 더욱 부추겼다.
디지털 성범죄는 변종을 거듭했다.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 없이 몰카는 ‘n번방’으로 진화했다. <쿠키뉴스>는 다국적 다큐멘터리팀 ‘게이즈 닥스(Gaze Docs)’과 함께 4회에 걸쳐 디지털 성범죄의 과거와 현재를 쫓는다. 편집자.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디지털 성범죄는 새삼스럽지 않은 사건이 됐다. 여성들은 공중화장실에 들어서며 ‘어디 수상한 렌즈 없나’ 두리번거리기 일쑤다. 키워드 하나만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불법 촬영물을 열어볼 수 있다. 이 사이트가 막히면, 저 사이트로 가면 그만. 저 사이트가 막혀도 수십개 웹하드 어딘가에 저장돼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별 노력 없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n번방 사건은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을 활용해 자행된 디지털 성착취 범죄다. n번방은 성착취 영상물이 유포된 채팅방이다. 채팅방 운영자들은 지난 2018년부터 아르바이트 모집을 가장하거나 신분을 속여 피해 여성들에게 접근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 스스로 나체 사진과 영상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했고, 영상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유료 회원들에게 배포했다.
외신들도 n번방 사건을 중대하게 다뤘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젊은 영상 제작자들이 있다. 영국, 그리스, 라트비아 등 유럽 국적의 청년들이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뭉쳤다. 다큐멘터리 제작팀 게이즈 닥스는 지난해 12월 단출한 촬영 장비를 챙겨 난생처음 한국에 입국했다. 이후 반년 넘게 한국에서 n번방 가해자들이 검거되는 과정을 기록했다.
당초 팀원들은 몰카 범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취재를 시작하니 몰카는 빙산의 일각. n번방을 필두로 천태만상 디지털 성범죄가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팀원들의 시선은 몰카 너머로 이동했고, 취재 범위는 넓어졌다. 불법 촬영물 공유와 강간 모의의 온상지였던 ‘소라넷’부터 불법 촬영·유포 범죄의 시초 격인 ‘빨간 마후라’까지. 팀원들은 한국인들조차 덮어놓고 외면했던 불법의 역사를 추적했다.
팀원들은 범죄에 맞서는 여성들과 함께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창립 구성원, 소라넷을 폐쇄시킨 DSO(Digital Sexual crime Out) 대표 등 여성 인권운동가들과 소통하며 투쟁담을 기록했다. 팀원들에게 다큐멘터리 촬영은 디지털 성범죄의 종식을 앞당길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게이즈 닥스 팀은 디지털 성범죄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여성혐오를 확인했다. 여성혐오를 극복하는 것이 범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시작점이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게이즈 닥스 팀이 우리나라에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책과 법을 바꾸려는 한국 여성들의 열정은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 없이 뜨겁기 때문이다. 게이즈 닥스 팀은 한국 사례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해결 방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말한다. <쿠키뉴스>도 의기투합했다. 기자는 4월부터 이들과 동행했다.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 불법 촬영 범죄 수법과 여성혐오 문화, 여성 대상 범죄, 아울러 이를 극복하려는 여성 운동가들을 공동 취재했다.
쿠키뉴스는 게이즈 닥스와 함께 크라우드펀딩을 기획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인 이들에게는 한국 체류 비용도 감당하기 벅찼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 비용이 가중되면서 팀원들의 한국 취재는 고비를 맞닥뜨렸다. 펀딩에서 모인 후원금은 게이즈 닥스의 여정이 교착상태를 피해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쿠키뉴스는 게이즈 닥스와 함께 모금을 시작합니다. 텀블벅 <한국 디지털 성범죄와 게임체인저 : Gaze Docs>으로 모인 소중한 후원금은 다큐멘터리 ‘Molka’(가제)의 촬영·편집·번역 작업에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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