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지난 9일 자정쯤 숨진 채 발견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13일 끝났지만 박 시장의 사망을 둘러싼 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의 여파는 정치권과 청와대, 시민사회로까지 일파만파 확산되는 분위기다.
박 전 시장 사건은 크게 3가지 방향에서 말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성추행 사건의 수사문제다. 통상적으로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해왔지만, 인권단체와 야권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전국 60개 인권단체가 16일 성명을 내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 비서를 향해 “당신의 존엄한 삶을 위해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박 전 시장의 죽음이 사건의 진실을 덮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윤미향 사건,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 조사하기 위한 상임위 소집에 마지못해서 응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박 전 시장이 소속됐던 민주당에게 국정조사 참여를 강하게 요구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역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아직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박 전 시장의 사망경위에 대한 수사만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에서는 인권위의 조사와는 별도로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자체적으로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기자회견을 연기하려했던 서울시 간부가 조사단 구성을 주도했다는 점이나, 또 다른 쟁점인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사실 누설문제와 서울시 관계자들이 얽혀있을 수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의 진정에 따라 성추행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관 배정에 나섰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제3자에 의한 진정사건인 만큼 피해 당사자가 조사 진행을 원치 않을 경우 ‘각하’될 수도 있고, 인권위의 처분이 권고에 불과해 박 전 시장과 시 공무원들의 행위가 밝혀지더라도 강제력이 발휘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박 전 시장이 유서를 남기고 잠적하는 과정에서 성추행 피소사실이 어떻게 유출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경찰청에서 청와대로 피소사실에 대한 보고가 올라감에 따라 청와대가 사실을 인지했다는 점 정도다. 이에 야권은 청와대나 민주당, 혹은 경찰에서 서울시로 관련 사실을 전달했을 것이라고 추론하며 역시 사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은 피해자를 향한 2차 피해문제다. 피해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피해호소인’ 혹은 ‘고발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피해자 연대와 조문거부를 공언한 이들을 향한 비난, 피해자 신상털기와 공개요구, 성추행사건과 관련 ‘섹스스캔들’ 등의 표현이 등장하며 벌어지는 논쟁 등 진정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는 조짐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은 박 전 시장과 관련된 사건 언급을 최소화하려는 모습만 관찰된다. 심지어 여성가족부에서 이례적으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피해자’로 규명함에도 불구하고 표현을 철회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야권의 국정조사나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등이 제시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응 관련 지침의 맹점도 문제시 되고 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17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를 소집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피해자 보호대책 및 유사사건 재발방지 등에 대한 의견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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