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없는 배터리 동맹...업계 “담합으로 소송 당할 수도”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물론 재계 총수들의 행보로 ‘K배터리 동맹’이라는 낯선 용어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내 K배터리 동맹론은 현대차를 포함한 삼성SDI와 LG화학, SK이노베이션 배터리 3사가 국가 배터리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협력체를 구성해야한다는 것이 골자인 주장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전반이 전기차로 전환되는 가운데 배터리 산업이 제2의 반도체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성장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약 220만대가 판매된 전기차는 2025년이면 1200만대 이상 판매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배터리 시장도 약 180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2025년 약 170조원으로 예상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을 국가 대항전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국내 업체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산업계에서는 업체 간 협력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러한 행보로 자칫 해외 규제당국으로부터 담합행위로 피소될 수도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IT업계 관계자는 “어느 업군이 됐던 글로벌 업체의 수주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회사들이 갑자기 모여 협력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라며 “미래 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라는 얘기도 서로가 지향하는 기술도 다른데다 어느 누구도 핵심 기술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이권에 있어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1,2위 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에게 후발주자격인 SK이노베이션과 협력하라는 것도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업계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협력은 기본적으로 모든 참가자들에게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의 경쟁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실제 전자업계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한 것도 치열한 기술 개발과 국내외 시장 개척을 한 결과이지 양사간 협력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써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동맹이 아니라 각자 도생과 경쟁업체의 거센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기반으로 현재의 시장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소송 중에 협업?...“오월동주는 없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경우 협업은 더욱 어려워보인다. 양사는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조기패소 판결이 난 상황에서 협력을 하라는 것은 글로벌 시각으로 보면 기술을 탈취해 간 행위를 한 기업과 손을 잡으라고 떠미는 셈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배터리 업체간 협력은 법률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의견도 나온다. 한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는 “미국 셔면법과 유럽연합(EU)의 기능조약 등에서는 한국보다 더 엄격하게 정보교환 행위를 담합으로 규제하고 있다”면서 “동종업계 기업들이 구체적 합의 없이 교환된 정보를 바탕으로 동조적 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전문가는 “배터리 업체들의 주요 고객들이 대부분 미국과 EU에 소속돼 있는데 어설프게 협력방안을 논의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담합으로 피소당할 수도 있다”며 “피해 내용에 대해 소비자 집단의 민사소송도 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감안했을 때 국내 배터리 업체간의 동맹이나 협력은 사실상 현실성이 없고, 오히려 어설프게 접근할 경우 담합행위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업계 “동맹보다 현실성있는 선의의 경쟁 통해 배터리 수주를 늘려야”
결국 최근 현대기아차의 행보는 배터리 업체의 동맹이 아닌 오히려 수주 경쟁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경쟁력 있는 우수한 제품을 공급받는 것이 현재 최우선 과제다. 그 동안 거래가 전혀 없었던 삼성SDI를 방문하면서 기존의 공급업체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더욱 긴장하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시각도 있다.
결국 배터리 업체간 협력은 현실성이 없지만 앞으로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간 합종연횡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는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받는 사업구조 확보가 전기차 경쟁에서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배터리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해 말 GM과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지난해 6월에는 중국 로컬 브랜드 1위 지리자동차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도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현재 합작공장을 건설하 중이다. 독일 폭스바겐도 지난해 6월 스웨덴의 신생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와 합작으로 연 생산량 16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전기차 생산 초기만 해도 배터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합작법인 설립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안정적인 조달이 우선시되면서 배터리 기업이 독자적인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합작법인 설립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이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계획이 매우 도전적으로 잡혀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GM은 향후 4년간 쉐보레·캐딜락 등 여러 브랜드에서 20여종의 전기차를 출시해 2026년까지 연간 10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독일의 폭스바겐도 내연기관차의 종식을 선언하며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1월 향후 5년간 600억 유로, 우리 돈으로 약 78조원을 투자해 순수 전기차 75종, 하이브리드 60종을 개발 생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전체 투자액의 60%(360억 유로)는 신차 개발에, 나머지는 공장 부지 구입 및 설비투자에 쓰일 전망이다.
이처럼 완성차 업계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생존요소가 됐다. 스웨덴 자동차 업체 볼보는 올해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고, 신차는 전기차만 만들겠다고 발표했으며 2021년까지 총 5종의 순수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독일 자동차 업체 BMW는 중국에 연간 생산 16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는 전기차 브랜드 ‘EQ’ 모델 개발에 100억 유로(한화 약 13조원) 이상,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분야에 10억 유로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2025년까지 23종의 전기차를 내놓고, 전기차 판매대수를 100만대로 늘려 시장점유율 10%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의 최근 국내 배터리 기업과의 만남은 공정한 선의의 경쟁 구도에 기반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처를 확보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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