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을 요구한 공정거래 법률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며 재계 총수들의 행보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K배터리 동맹’이 현실성이 결여된 낙관론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반응과 별개로 한국에서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2차전지(전기차·노트북·휴대폰 배터리 등에 쓰이는 배터리) 사업이 기업 간 협업을 통해 융성할 수 있을지는 꼭 살펴봐야 할 문제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배터리 산업은 차세대 먹거리로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약 220만대가 판매된 전기차는 2025년이면 1200만대 이상으로 늘어나고, 배터리 시장도 약 180조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2025년 약 170조원대 성장이 예상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터리 산업은 국가대항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신기루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이 해외 당국으로부터 담합행위로 피소될 우려가 크다. 또 어느 업군이 됐던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기업들이 갑자기 모여 협력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애초에 성립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에서 앞장서서 미래 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라는 얘기도 어불성설이다. 현재 각 기업이 지향하는 기술은 서로 다르다. 게다가 누구도 핵심 기술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과 삼성SDI, LG화학 이들 배터리 기업이 각사별로 바라보는 ‘신세계’가 다르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이들 기업은 각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책임이 있고, 기술 지향점과 기술 수준도 모두 다르다.
협력이란 기본적으로 모든 참가자에게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리란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서로의 잇속을 채워야만 하는 3사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이야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허구에 가까운 K배터리 동맹과 달리 한국 산업계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글로벌 1위 성공 신화’를 이미 이룩했다.
전자업계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한 것은 무용한 동맹이 아닌 치열한 기술 개발과 국내외 시장 개척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반도체 시장도 마찬가지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동맹이 아니라 ‘각자도생’과 경쟁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선제 투자와 기술 개발로 현재 시장 지위를 확보했다.
결국 허상에 가까운 배터리 동맹보다는 치열한 경쟁과 ‘가능한 협력’을 통해 글로벌 배터리 전쟁에 집중하는 것이 엄혹한 무한 경쟁 시대에 그나마 생산성이 있어 보인다.
현재 배터리 업체 간 협력은 현실성이 없지만,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는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공급받는 사업구조 확보가 전기차 경쟁에서의 핵심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로 시각을 돌려본다면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은 지난해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도 지난해 6월 스웨덴의 신생 배터리 업체인 노스볼트와 합작으로 연 생산량 16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담대한 전기차 사업계획도 국내 배터리 동맹보다는 글로벌로 시선을 돌려야 할 이유다.
GM(지엠)은 쉐보레·캐딜락 등 여러 브랜드에서 20여 종의 전기차를 출시해 2026년까지 연간 10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출 방침이다. 세계 최대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은 지난해 11월 앞으로 5년간 약 78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75종, 하이브리드 60종을 개발 및 생산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완성차 업계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시장은 준비됐다. 정부와 업계는 실현 불가한 허상에 힘을 낭비하고, ‘쇼잉’에 집착하기보다는 경쟁과 협력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억지 춘향 ‘팀 코리아’보다는 가능한 전략에 집중하고, 서로에게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는 프레너미(frenemy·친구이자 적)를 통해 한국 배터리 산업이 꽃피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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