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야구 갈증에 시달리던 팬들의 발길은 일제히 야구장으로 향했다. 랜선으로 응원만 하던 팬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직접 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했다. 텅 빈 관중석 앞에서 경기를 치르던 선수들은 오랜만에 만난 팬들을 더욱 반겼다.
쿠키뉴스는 지난 13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의 경기가 열린 수원KT위즈파크를 찾아 관람석에서 직접 경기를 지켜봤다. 응원 금지, 음식물 취식 금지 등 제한 요소가 많은 '반쪽짜리' 야구장이었지만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팬들도 여럿이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입장객들은 메인 출입구에 설치된 발열 체크 시스템에서 1차적인 체온 검사를 받는다. 이어 관중석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상시적으로 발열을 확인했다. 여기에 본인의 휴대폰에 생성한 QR 코드를 전용 앱에 인식시킨 후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거리 두기를 당부하는 현장 스태프의 안내가 거듭 이어졌다. 현장 스태프들은 마스크 착용, 사람 간 거리 2m(최소 1m) 이상 유지하기 등 주의 사항들을 계속 안내하며 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KT위즈파크의 경우 좌석 간 거리 두기를 위해 지정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테이프로 막아놔 사람들이 앉을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기존의 입장권 외에도 스티커로 사람들의 입장 유무를 판단할 수 있게 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존재했다. 구단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춰 방역에 힘썼지만 몰상식한 팬도 있었다.이날 경기에선 일부 초등학생 팬들이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 사람 간 거리 유지하기 방침을 무시하고 나란히 앉아 응원을 하거나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 영상을 보기도 했다. 약 10분 동안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현장 안내원이 나섰다.
이날 홈팀인 KT가 원정팀인 SK에게 6점차로 끌려가자 고함을 지르는 팬도 있었다.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배려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자칫 소수 인원에 의해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또 공수교대 시 화장실을 사용하는 관중들의 대다수가 간격을 유지하지 않는 모습도 확인됐다.△ 썰렁함 맴돌았던 야구장
관중석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제한된다. 물을 비롯한 음료만 마실 수 있다. 야구 ‘직관의 꽃’인 응원도 불가능하다. 야구장 이용 규칙이 고지된 뒤 커뮤니티상에선 한여름에 치맥(치킨과 맥주)과 함성, 직관의 매력이 사라진 야구장을 찾느니 시원하게 ‘집관’ 하겠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이날 역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많지 않았다. KT가 상대적으로 비인기 구단이라고 하더라도 약 1500명을 넘기지 못했다. KT위즈파크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약 4000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었다. 응원이 금지돼 몰입도가 떨어지다보니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럿 보였다. 기자가 앉은 구역에는 약 40명이 앉았는데, 이 중 약 10명은 경기보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시즌권을 끊을 정도로 야구 직관을 즐겼다는 A(28)씨는 “관중 입장이 허용되고 야구장을 한 번 가봤는데,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단순히 야구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응원이 주된 목적이기도 하다”며 “지금 상황에 맞는 응원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핸드폰을 이용한 응원 말이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구장에 입점한 가게들이 대다수 문을 닫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KT위즈파크에는 약 50개 이상의 상점이 입점해 있는데, 이날 문을 연 상점은 10곳도 되지 않았다. 이 중 음식물을 취급하는 가게는 약 3곳에 불과했다. 대다수가 편의점이나 음료를 취급하는 가게였다.
경기장을 찾은 김지현(26)씨는 “과거 KT의 직관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음식점 때문이기도 했다. 정말 맛있는 게 많아서 테이블석에서 음식과 함께 야구를 보는 매력이 있었다”며 “지금은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다. 항상 경기가 끝나고 뭘 먹어야 해 살이 찔까 고민이 된다. 야구장에서 마음 놓고 먹던 시절이 그립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 모처럼 나들이 온 기분
SK의 일방적인 리드에 KT위즈파크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경기를 관람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팬들도 있었다. 유니폼을 챙겨입은 팬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셀프 카메라(셀카)를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휴대폰 동영상 촬영으로 멀리서나마 경기 장면을 담는 모습도 있었다.
이날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B씨(36)는 “작년까지는 나들이 오는 기분으로 야구장을 자주 찾았었는데 올해는 이제야 오게 됐다”며 “가족들과 떨어져 앉아 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나오니까 답답함이 덜하다. 모처럼 나왔는데 KT가 지고 있어서 조금 아쉽다”고 웃었다.
△ 다시 무관중… 그때가 좋았지
기자가 야구장을 방문하고 난 사흘 뒤, 야구팬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렸다. 서울·경기 지역에 신규 코로나19 집단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강화돼 두산, LG, 키움, SK, KT, 롯데가 17일부터 다시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했다. 이어 NC, 삼성, 한화가 잔여 홈경기를 무관중 경기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현재 KIA를 제외한 전 구단이 무관중으로 전환해 사실상 야구장에서 경기를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18일 경기가 열리고 있는 잠실야구장 인근의 잠실새내역 먹자골목을 찾았다. 근처 호프집에서 LG와 KIA의 경기를 일행과 함께 TV로 지켜보던 회사원 최정원(37)씨는 “많이 슬프다. LG와 라이벌전이라 이번 3연전 경기를 예매하려 했는데 취소가 됐다. 야구를 빼앗긴 느낌”이라며 “타이밍이 너무 아쉽다. 다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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