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쉬운 드라마 입니다.” SBS 새 금토극 ‘앨리스’의 연출을 맡은 백수찬 PD는 첫 방송에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 말을 거듭했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SF 드라마이지만,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설명이다. SF는 외피일 뿐 작품 안에는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앨리스’가 밑줄을 긋고 싶은 것은 SF 쪽보다 휴먼드라마에 가까운 듯 보였다.
‘앨리스’는 배우 주원과 김희선의 복귀작으로 방영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주원은 군 전역 후 첫 작품으로 ‘앨리스’를 골랐다. 제대한 그의 앞에 몰린 50편의 대본 중 그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각시탈’ ‘굿 닥터’ ‘용팔이’ 등에 출연했던 주원의 선택에 기대감을 보이는 예비 시청자가 많았다. 드라마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뒀던 김희선도 오랜만에 지상파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돌아왔다. 그는 이번 작품서 1인2역과 본격적인 액션에 도전했다.
지난 28일 방송한 첫 편에서는 시간여행 시스템인 앨리스를 구축한 과학자 윤태이(김희선)가 미래(2050년)에서 시간여행에 관한 예언서를 찾기 위해 과거(1992년)의 평행세계로 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윤태이는 동료이자 연인인 유민혁(곽시양)과 예언서를 손에 넣은 후, 임신 상태로 방사능 웜홀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윤태이는 과거에 홀로 남아 박선영(김희선)이라는 새 신분으로 아들 박진겸(주원)을 낳아 기른다. 박진겸은 어릴 적 무감정증 진단을 받지만, 박선영의 교육으로 사회생활을 해나간다. 하지만 박선영은 생일에 정체모를 존재에게 습격을 당해 사망한다.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이 된 진겸은 우연히 어머니와 똑같은 현재의 윤태이(김희선)와 마주친다.
백 PD의 장담대로 ‘앨리스’의 첫회는 ‘어렵지 않았다’는 평이 많았다. 2050년에서 1992년, 2010년에서 2020년 시간대를 네 번이나 건너 뛰는 빠른 호흡으로 몰아치듯 초반 설정을 풀어낸 덕분이다. 인물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과 대사도 둘러가는 법이 없었다. 시청자가 쉽게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는 감정과 사건을 배치한 효과도 있었다. 3년의 공백을 딛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역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주원의 연기는 안정적이었고, 첫편부터 모든 것을 쏟아낸 듯 보이는 김희선의 존재감도 확실했다. 한국 SF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온 컴퓨터그래픽(CG)도 자연스럽게 화면과 어우러졌다.
하지만 쉬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려보다 쉬운 덕분에 호감을 갖는 시청자도 있겠지만, 기대보다 쉽기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다. 특히 인물들의 감정이나 고민을 너무 쉽게 넘기고,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몰입감을 덜어냈다. 시간여행 시스템을 완성할 정도로 능력있었던 과학자가 임신 사실을 알고난 직후 한치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과거에 남아 신분을 숨기며 아들을 위해서만 산다는 내용을 ‘모성애’ 한마디로 쉽게 이해해야만 하는 걸까.
아직 풀어가야할 것이 많은 만큼 판단은 이르다. 성패는 인물의 드라마뿐 아니라 시간여행과 예언서 등 SF 설정에 달려 있다. 앨리스와 예언의 비밀 등이 짜임새 있게 풀린다면, 지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훗날 무릎을 치며 회상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목적지가 ‘휴먼’일지라도 SF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 볼까
조금 고루해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한다. 시간여행이나 평행세계 등이 어렵게 느껴져 시도하지 않았던 사람도 도전해볼만 하다. 주원이나 김희선을 TV에서 보기 만을 기다렸던 시청자라면 채널 고정.
◼︎ 말까
분명 2010년 배경인데 10년은 더 과거인 것 같은 감성과 연출을 견디고 싶지 않은 시청자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한국형 SF라는 말을 싫어하는 시청자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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