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린사이토,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와 희망 잇는 치료제로 계속 빛나길

블린사이토,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와 희망 잇는 치료제로 계속 빛나길

기사승인 2020-09-08 06:05:01

글·도영록 대한혈액학회 성인급성림프모구백혈병연구회 위원장(계명대 동산의료원 교수)

매년 9월은 ‘백혈병 인식의 달’이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환자들을 향한 응원 메시지에 혈액종양학과 전문의로서 사명과 노력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때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매년 이 때쯤 전해오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더 기다려진다. 바로 2015년 여름에 만삭인 아내와 함께 진료실을 찾은 김준현(37세)씨의 소식이다. 결혼 4년 만에 소중한 아이를 얻고 부러울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그는 반복되는 코피와 멍, 어지러움을 겪었고 동네의원을 거쳐 필자의 병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병을 진단받았다. 

관해(혈액 내 암세포가 5% 미만인 상태)만 나온다면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고 완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나이였지만, 두 번의 항암치료에도 좀처럼 백혈병 세포 수치가 낮아지지 않았다.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을 상황이었고 생사를 다투던 그때,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블린사이토’라는 새로운 치료제의 보험급여가 개시됐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관해가 왔고, 조혈모이식수술도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준현씨는 얼마 전 딸 예지양의 다섯 번째 생일을 함께 보냈다. 준현씨는 항상 “블린사이토 치료를 적시에 받음으로써 인생에서 자신의 모든 행운을 쓴 것 같다”고 한다.

블린사이토(블리나투모맙)는 연령이나 염색체 변이, 조혈모세포이식 가능 여부에 관계없이 이전 치료에 반응이 없었거나 재발한 모든 환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제다. 2015년 11월 성인 재발·불응성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 전구 B세포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후, 당시에 재발한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될 수 있었고, 이후에도 소아 환자, 조혈모세포이식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 그리고 진행이 빠르기로 악명높은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Ph+)환자에까지 허가와 급여가 확대됐다. 

이는 급성림프모구 백혈병 중에서도 국내에서 매년 몇 십명, 몇 백명 단위로 발생하는 극소수의 환자들을 위해 수년간 노력한 결과로, 국내 급성 백혈병의 평균 생존기간을 블린사이토가 연장시켰다고 일컬을 만큼 재발·불응성 환자의 치료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이 치료제의 뛰어난 효과는 국내 의료진들이 실제 한국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해 발표한 연구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은 우리나라에서 연간 500명 내외에서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이중 재발 또는 불응을 겪은 환자는 200명 이하로 매우 적다. 연구진은 블린사이토가 처음 허가·급여 시의 필라델피아염색체 음성 환자들의 사례를 모아 값진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그 결과 기존 허가용 임상시험에 비해 훨씬 높은 반응률이 나왔다. 블린사이토가 국내의 성인 필라델피아 음성 환자에서 나타낸 관해율은 70%(32명 중 21명)로, 다국가 임상시험 결과(44%)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 연구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블린사이토로 치료받은 환자 중 62.5%가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이란 골수이식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 완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블린사이토는 정맥폐쇄증과 같은 조혈모세포이식의 치명적인 이상반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통한 관해 이후 이식을 목표로 하는 환자들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가교 치료제가 되고 있다. 

이는 블린사이토가 이중특이성 T세포 연관 항체로, 특이적인 바이트(BiTE, Biospecific T-cell Engager)라는 작용기전을 통해 BCP-ALL 세포에 존재하는 CD19항원과 체내 T세포의 CD3를 연결시킴으로써, ALL 세포사멸 뿐만 아니라 T세포 증폭을 통해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생물학적인 작용 기전을 가진 바이오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블린사이토는 이러한 이중항체 기전으로 작용하는 유일한 약으로, 백혈병 세포와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동시에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다른 면역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를 공격해 환자의 급성림프모구백혈병 상태에 관계없이 어떤 경우라도 치료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이 점이 다른 재발·불응성 ALL치료제인 항체-약물 복합체와의 근본적 차이로, 블린사이토가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의 재발·불응성 ALL환자 중 특히 조혈모세포이식을 계획하며 치료를 진행하는 비교적 젊은 환자나 이전 조혈모세포 이식 경험이 있는 재발·불응성 ALL 환자들에게 많이 고려되고, 진료 현장에서 그 어떤 약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치료 옵션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준현씨의 말 대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의지가 그에게 행운을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더 많은 환자들의 희망을 위해 이러한 행운을 가져다준 것은 신이나 운명이 아닌, 본인과 같은 극소수의 환자들이 빠르게 약을 쓸 수 있도록 힘써온 보건당국과 혁신적인 신약개발을 위해 매진한 임상 연구자들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제약사의 신약 개발 노력과 함께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백혈병 치료에 없어서는 안될 축이다. ‘백혈병 인식의 달’을 맞아 각계에서 환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며, 이러한 협력 속에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블린사이토가 재발 또는 불응성 백혈병 환자들의 완치를 위한 희망의 이정표가 되길 소망한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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