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글로벌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와 협업해 지난 3일 시작한 이 팬사인회는 보름 만에 4200만 명 넘는 이용자를 불러들였다. 사인회장에 입장하면 레페토 측이 준비한 36가지 사인 중 하나를 무작위로 받을 수 있다. 이용자와 블랙핑크의 아바타가 함께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돌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가수의 지식저작권(IP)을 활용한 콘텐츠가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월드투어 등 직접 활동에 제약이 걸리면서 여러 기획사들이 소속 가수의 간접 활동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가수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나 아바타도 이 중 하나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밴드 데이식스는 지난달 첫 유닛 ‘이븐 오브 데이’의 음반을 내면서 팀 캐릭터인 ‘데니멀즈’를 전면에 내세웠다. ‘데니멀즈가 여행을 떠난다’는 콘셉트로 음반에 실린 여섯 곡을 엮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타이틀곡 ‘파도가 끝나는 곳까지’의 뮤직비디오에선 데니멀즈가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길을 찾아낸다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일부 멤버가 심리적 불안 증세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애니메이션에 투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이돌 그룹의 캐릭터는 이들의의 세계관과도 공명한다. 오는 23일 데뷔하는 그룹 고스트나인과 그들의 공식 캐릭터 ‘글리즈’(GLEEZ)가 그런 사례다. 고스트나인은 ‘지구 내부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글리즈는 ‘지구 내부에 사는 귀신’을 형상화한 캐릭터로, 고스트나인을 성장시키고 함께 모험하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소속사는 설명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일찍부터 IP 사업에 뛰어든 기획사로 꼽힌다. 지난달 출시한 방탄소년단 캐릭터 ‘타이니탄’은 이미 글로벌 생활용품기업 P&G 제품인 다우니 어도러블 모델로 선정됐다. 타이니탄은 방탄소년단의 제2의 자아가 발현해 캐릭터가 됐다는 콘셉트로, ‘매직 도어’(Magic Door)를 통해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세계관을 갖는다.
빅히트는 향후 피규어, 팬시 상품, 미디어 콘텐츠 등 타이니탄을 테마로 한 상품들을 출시할 예정이다. 단순히 캐릭터를 활용한 기념상품을 넘어, 캐릭터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야심도 엿보인다. 빅히트 관계자는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처럼, 타이니탄 역시 모두의 꿈을 응원하는 힐링 콘텐츠로서 다양한 형태로 팬 여러분을 찾아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다매체 시대에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짚었다. 아이돌 캐릭터 등 IP를 활용한 여러 콘텐츠들이 “팬들에겐 또 하나의 즐길거리”이자 “기획사에겐 확실한 수익 아이템”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빅히트의 경우, IP 기반의 아티스트 간접 참여형 사업에서 올리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정 평론가는 “(IP 사업은) 콘텐츠 기획·제작이 가능한 대형 기획사에선 충분히 탐낼만한 아이템”이라면서도 “다만 말 그대로 ‘플러스알파’의 개념이기 때문에 산업 전반의 유행으로 자리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제페토·‘파도가 끝나는 곳까지’ 뮤직비디오 캡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