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쇳조각 삼킨 남수단 어린이 치료 

세브란스병원, 쇳조각 삼킨 남수단 어린이 치료 

코로나19 인해 입국 진통… 5월부터 두 차례 수술

기사승인 2020-09-29 10:52:31
글로리아 가족과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세브란스병원 제공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쇳조각을 삼켜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국에서 치료를 받지 못했던 남수단 어린이가 세브란스병원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했다.

약 2.5cm의 쇠 목걸이를 삼켜 식도와 기관지에 손상을 입은 남수단 글로리아(4·여) 간디가 세브란스병원에서 두 차례의 수술을 마치고 오는 30일 퇴원한다.

지난해 7월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글로리아는 남수단 자택 인근 병원에서 X-ray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글로리아의 가슴에서 쇳조각이 발견됐으며, 의사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수단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글로리아 가족이 다니던 교회 성도들과 이웃들은 모금을 통해 항공료와 수술비 12만 파운드(약 920달러)와 1000달러를 마련해 글로리아의 아버지 톰베 간디씨에게 전달했다. 간디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수단으로 향했다. 

수단의 한 병원에서 글로리아는 수술을 받았지만 쇳조각을 제거에 실패했다. 간디씨는 수술과 입원비로 쓰고 남은 돈은 200달러로 의료 시설이 갖춰진 이집트로 향했다. 이집트 병원에서는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간디씨는 수술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두 달간 친척집에 머물던 간디씨와 글로리아는 ‘한국인 선교사가 아픈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수소문해 한국인 선교사를 찾았다. 글로리아의 소식은 여러 선교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에 전달됐고, 현지에서 검사한 자료로 글로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흉부외과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의견을 보냈다.
 
글로리아의 한국행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결정됐다. 세브란스병원은 글로리아가 최대한 빨리 입국할 수 있도록 한국대사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전달했으며  3월25일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글로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도 비자발급을 서둘렀다. 

그러나 출국 이틀 전 이집트 정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공항을 폐쇄했다. 한국 정부도 모든 단기 입국 비자를 취소했다. 간디씨와 글로리아는 취소된 비자가 다시 발급될 때까지 대기한 끝에 지난 5월5일 어린이날 한국에 입국했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글로리아의 몸 속 쇳조각의  정확한 위치를 일반 검사로 가늠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흉부외과에서는 코어라인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CT 결과를 3차원으로 재건하고, 3D 프린팅을 시행했다.

검사 결과 쇳조각은 글로리아의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대동맥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칫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태였으며, 쇳조각이 1년 가까이 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염증도 심했다. 쇳조각이 기관지를 뚫고 들어가 호흡을 방해해, 호흡곤란 증상이 있었으며 식사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박성용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영상의학과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관외과 등 관련 과와의 협진을 통해 글로리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웠다. 한 번의 수술로 쇳조각을 제거하고 구조물들의 손상을 완전히 복구할 가능성은 50% 미만이었다.

박 교수는 좌측 개흉술을 통해 주기관지를 절개하고, 대동맥을 비켜 손상된 조직에서 쇳조각을 제거했다.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였다.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주기관지의 뒷벽을 완전히 녹였고, 이로 인해 좌측 기관지 대부분이 손상됐으며 기관지 입구가 좁아져 있었다. 박 교수는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손상된 좌측 기관지와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약 5mm 누공(瘻孔)을 봉합했다.

글로리아는 수술 후 염증이 줄어들었고 호흡에도 무리가 없었다. 쇠붙이를 제거한 부위도 잘 아물었다. 그러나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누공은 오랫동안 손상된 조직이기 때문에 완전히 아물지 않아 1mm 크기로 남아있었다. 이 부위로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서 반복적으로 흡인이 일어나 글로리아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박 교수는 소화기내과와 내시경 시술을 통해 1mm 누공을 봉합하려 했지만, 복구가 되지 않아 2차 수술에 들어갔다. 박 교수와 호인걸 소아외과 교수는 쇳조각으로 녹은 기관지 뒷벽을 식도벽을 사용해 새로 만들어 재건했다. 남아있는 1mm 크기의 누공은 기관지 사이 근육을 사용해 다시 봉합하고, 잘려진 2cm 길이의 식도는 당겨서 어어 붙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의료진은 글로리아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했다. 글로리아의 호흡 수가 분당 55회로 갑자기 빨라지고, 심박수도 160~170으로 빨라졌으며 호흡곤란도 나타났다. 2주간의 회복기간을 거쳐 글로리아는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식사도 가능하게 됐다.

김경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는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오랜 기간 쇳조각에 눌려서 녹아버린 좌측 기관지는 좁고 폐도 약해진 상태였다”며 “안정을 찾으면서 기관지와 폐도 호전되었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쇳조각을 삼키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글로리아가 힘든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되찾아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보람을 느낀다”면서 “글로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아버지의 헌신과 글로리아를 위해 함께 치료 방침을 상의하고 헌신적으로 치료해 준 의료진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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