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비밀의 숲’이 품고 있던 것 [TV봤더니]

두 번째 ‘비밀의 숲’이 품고 있던 것 [TV봤더니]

기사승인 2020-10-06 05:05:14
▲ 사진=tvN 제공

* 기사 내용에 ‘비밀의 숲 2’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좀처럼 보이지 않던 ‘숲’이 결국 본모습을 드러냈다. 3년 전 한 차례 학습으로 익숙한 동시에 달라진 점이 많았다. tvN ‘비밀의 숲’ 시즌1이 검찰 내부에서 윤리와 신념을 지키고 또 흔들리며 살아가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멀리서 조명했다면, ‘비밀의 숲’ 시즌2는 검경 수사권 소재를 매개로 멀게 느껴졌던 검찰과 경찰의 이야기를 우리 가까이로 끌어왔다. 안정적인 틀을 반복하기보다 과감하게 새 길을 열었다. 그 결과 ‘비밀의 숲’ 시리즈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취를 또다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비밀의 숲’ 시즌1을 완주한 시청자들은 이수연 작가가 장르적 틀 안에서 조직 구조 변화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 때문인지 ‘비밀의 숲 2’는 서동재(이준혁)의 실종이 몇 주 동안 해결되지 않는 답답한 전개에도 시청률이 7%대를 유지했다. 실제로 서동재는 살아서 돌아왔고, 마지막엔 그동안 뿌린 떡밥을 대부분 회수했다. 도중하차를 선언했던 시청자들이 있는 동시에 세 번째 시즌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남아 있다. 작가가 결말엔 명확한 해답을 줄 거라는 믿음에 부응한 결과다.

‘비밀의 숲 2’가 초중반 혹평을 받은 데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범인을 향해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극적인 장르물 대신, 복잡하고 실패가 가득한 현실을 그리는 걸 선택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종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검찰과 경찰은 공권력으로 수많은 의심과 추궁을 해야 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의외의 곳에서 범인을 잡았다. 시청자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는 전개지만 의미 없는 시간들은 아니었다. 서동재(이준혁)를 찾기 위해 허둥대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의 사연이 드러났다. 황시목(조승우)에게 의심받으면서도 숨죽이며 서동재를 기다렸던 아내(최희서), 가짜 제보자의 지목으로 억울하게 가택 수사를 당하며 과거의 죄를 고백한 세곡지구대 백중기(정승길), 탈출할 길 없는 괴롭힘 끝에 마지막 선택으로 살인을 결심했던 전액 장학금 받는 대학생 김후정(김동휘), 그리고 거액의 돈과 검찰의 비호를 받는다는 유혹에 넘어가 죄책감 없이 사건을 엉망으로 만든 가짜 목격자 전기혁(류성록)까지. 범인을 빨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 과정이 효율적이고 윤리적이길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게 했다.

이수연 작가는 ‘비밀의 숲 2’ 기획의도에 “관망자가 아닌 참여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드라마를 시작한다”고 적었다. 작가의 말처럼 ‘비밀의 숲 2’ 시청자들은 한여진(배두나), 황시목과 함께 사건에 참여하는 체험의 과정을 겪었다. 드라마는 여러 회차를 소모하며 수많은 경찰과 검사들이 헛발질 하는 모습을 성실하고 설득력 있게 그렸다. 꼼꼼하게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고 지휘하고 영장을 청구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두 차례 열린 검경 협의회에선 여의도 정치인들처럼 양쪽으로 나뉘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주장해 시간을 낭비했지만, 서동재 실종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그 끝에 시청자들이 마주친 건 집단의 이익을 위하는 일부의 행동과 판단이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처음부터 힘 빠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야기 구조다.

▲ 사진=tvN 제공

첫 방송 전부터 알려진 것처럼 ‘비밀의 숲 2’는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두고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검경이 협력한다 해도 사건이 해결되기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시즌1은 이창준(유재명)을 중심으로 강력한 검찰의 힘과 내부 결속력을 보여주고 그 힘이 양날의 검이라는 점을 짚었다. 검사가 마음을 먹으면 힘을 얼마나 휘두를 수 있는지, 잘못된 길로 빠지면 얼마나 큰 죄를 만들어내는지를 그렸다. 시즌2에선 검사와 경찰이 멋있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직장인들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결과를 내지 못해 상사에게 깨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검사와 경찰들의 힘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이 올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덕분에 황시목과 한여진이 한가롭게 밥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이수연 작가는 단단하고 보수적인 조직(검찰, 경찰, 대학병원) 내부의 비리 폭로를 넘어 근본적인 구조적 해결 방법을 탐사하는 드라마를 연이어 쓰고 있다. ‘비밀의 숲 2’의 칼끝은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에게 향했다. 첫 회에 등장한 통영 해안가 익사 사건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살인 사건으로 결론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후회한다. 서울에서 먼 지방에서 일어난 사고가 검사 실종 사건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그 사건을 조금만 더 들여다봤다면, 증언을 흘려듣지 않았다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사건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회에서 “사람 하나에 좌우되는 게 무슨 빌어먹을 조직”이냐는 이연재(윤세아)의 외침에 강원철(박성근)은 “조직은 다 사람”이란 메시지를 남긴다.

‘비밀의 숲 2’는 마지막까지 극적 쾌감을 주지 않았다. 누군가 극적으로 행복을 찾게 되는 개인의 해피엔딩 대신, 죽을 뻔 했던 사람이 살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 받는 사회적 해피엔딩을 그렸다. 시청자들은 사건의 수사 과정과 인물들의 공로를 알지만, 극 중 인물들은 공(功)보다 과(過)에 직면하며 비난과 책임을 떠맡는다. 직업윤리를 지킨다는 건 조직이 아닌 개인 신념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드라마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무엇을 하든 과정 자체는 노력이지만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고 적은 작가의 기획의도는 마지막회 대사에도 인용된다. 황시목과 한여진은 노력을 잠시 멈췄던 사람들이 떠난 유산을 묵묵히 받아든다.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앞으로도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걸 알고 있다. 그렇게 ‘비밀의 숲 2’는 별다른 떡밥 없이 시즌3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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