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지난 2017년 지구대 근무 중 취객에게 폭행을 당한 최모(31) 경장은 어깨 관절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지난 4월 법원에 제출된 신체감정서에 따르면 향후 노동능력 상실률 15% 판정을 받은 상태다. 주취자, 순찰차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도 있다. 치료비는 공무원 연금공단에서 30% 정도 지급받은 것 외에 대출로 충당해왔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복직이 절실한 상황이다. 최 경장은 경찰서에 “현장직 복무는 어렵다”는 진단서를 제출하고 인사 고충도 접수했다. 그러나 내근 부서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최 경장은 “사고당한 지구대로 다시 돌아가라는 말은 ‘사지’(死地)로 가라는 말과 같다”고 토로했다.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병을 얻은 ‘공상 공무원’이 복직 시 본인 의사를 반영해 업무에 비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건강 상태를 이유로 인사에 불리한 처우를 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의무가 아니다 보니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공상 공무원은 매년 늘고 있다. 지난 14일 인사혁신처가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상 판정 받은 공무원은 6298명에 달한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5.4%씩 증가하는 추세다.
‘공무원 재해보상법 시행령’ 개정안(이하 개정안)은 지난 8월25일부터 시행됐다. 개정안에는 △임용권자는 공무상 재해를 입은 소속 공무원의 원활한 직무 복귀를 위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에 적합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본인 의사를 반영해 보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건강 상태를 이유로 인사에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인사혁신처는 개정안을 통해 음주운전 단속 중 차량에 치여 다리뼈가 골절된 경찰 공무원이 불편한 다리로 현장 업무에 복귀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희망하는 내근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개정안으로 공상 경찰관을 구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제도와 마찬가지로 선언적 규정에 그친다는 점 때문이다. 경찰 공무원 인사운영규칙 제4조는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 등 사유가 있거나 신체장애로 정상적인 업무수행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 신체적 조건, 특기, 적성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직무수행에 적합한 직위에 보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정안 역시 단순히 ‘임명권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수준에 그친다. 건강 상태를 이유로 부당한 인사를 낸 임명권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에 대한 조항은 없다.
인사혁신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상 판정 받은 공무원 중 경찰청 소속이 2105명으로 가장 많다. 지구대와 파출소 등 현장직은 업무 강도가 세고 위험해 ‘기피직’으로 분류된다. 안전한 내근직에만 사람이 몰려 현장직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린다. 때문에 휴직을 마친 경찰관 대부분 현장직에 배치되는데 공상 경찰관도 예외가 아니라는게 경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경찰청 관계자는 기존 인사 규정과 개정안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관서에 따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 관계자 역시 “임용권자가 인사를 할 때 공무원 의사 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어 “공상 공무원의 의사를 반영해 인사가 이뤄지는 근거 법령을 새로 만들고 부처가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학영 경찰소방공상자후원연합회 이사장은 “경찰 조직에는 공무원이 질병, 부상 등으로 휴직을 하고 와도 ‘놀다 왔다’는 인식이 아직 남아있다”면서 “공상 경찰을 배려하는 조직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강제성 없는 법은 ‘있으나 마나’한 제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정말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공상 공무원을 의사에 반해 인사 배치하거나 건강상 이유로 불이익을 줬을 경우 임용권자에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는 조항까지 마련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서야 공상 공무원을 두 번 울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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