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문제는 두 가지다. 대학생 딸은 5개월 동안 임신 사실을 감췄고, 그의 엄마는 재혼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임신을 엄마와 아빠는 넘어가지 못하고 타박한다. 그러자 딸은 친아빠를 찾아 나섰다. 이 가족,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의 본격적인 갈등은 상영 시작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시작된다. 임신 5개월의 토일(정수정)이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태연하게 엄마(장혜진)와 아빠(최덕문)에게 설명하는 것. 부모님의 거센 반대에 부딪힌 토일은 가출을 시도하고 친아빠(이해영)를 찾으러 고향인 대구로 향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기억에 의지하는 토일에게 유일한 단서는 ‘최씨 성을 가진 기술가정 선생님’. 토일은 친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부모님과 화해하고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남자친구인 고3 호훈(신재휘)과 결혼할 수 있을까.
임신 5개월이 될 때까지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토일의 과감하고 도발적인 행동에 놀라기엔 이르다. ‘애비규환’은 이후에도 여러 번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며 솔직하고 독특한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이야기를 위해 인위적인 가족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를 위해 전형성을 포기하는 느낌이다. 영화 속 갈등은 인물들의 세계를 뒤흔들지만, 대부분 적정선 안에서 일어나는 무해한 갈등이다. 인물들은 직접적인 대사나 장면보다 사건과 상황을 통해 간접적으로 서로를 이해해간다. 어느 가족보다 이상해 보이는 동시에 어느 가족보다 진짜 가족처럼 보인다.
토일이 친아빠를 떠나는 여정, 사라진 토일의 남자친구 호훈을 찾는 가족들의 여정은 ‘애비규환’을 지탱하는 두 개의 로드무비다. 토일이 홀로 걷는 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과정이라면, 가족들이 함께 걷는 길은 서로 간에 벌어진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는 과정이다. 영화는 임신과 이혼을 주요 소재로 다루지만, 진정으로 주목하는 건 가족 그 자체다. 토일에게 벌어진 임신과 엄마에게 벌어진 이혼이 조금씩 겹쳐지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드러난다. 엄마와 딸이 가족의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 임신과 이혼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달되며 그게 정말 도발적이고 독특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대부분 장면에서 홀로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 정수정의 매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지금까지 정수정 배우가 선보인 가장 훌륭한 포트폴리오이자, 아이돌 출신 배우의 편견을 깨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것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작품이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엄마 역할을 소화한 배우 장혜진과 강말금의 연기도 모든 순간 빛난다.
오는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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