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전환 시대, R&D 방법론의 진화와 여성과학기술인

[칼럼] 디지털 전환 시대, R&D 방법론의 진화와 여성과학기술인

기사승인 2020-12-04 16:08:04
▲ 사진=한선화 본부장,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제공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단순한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아니다. 필자는 디지털 전환을 디지털화를 통해 사회 또는 기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은 사물의 디지털화와 이를 통해 생성되는 데이터, 그리고 데이터 최적화를 위한 인공지능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최적화된 결과를 현실에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는 디지털 전환 시대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R&D 방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정보통신기술과 실험・관측 장비의 눈부신 발전이 있다. 대규모・초정밀 실험・관측 장비에서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양의 실험・관측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고, 정보통신 및 컴퓨팅 기술의 발달은 이러한 빅데이터의 전송, 저장, 분석이 가능케 했고, 데이터로부터 연구가 시작되는 데이터 중심 연구 (data-centric R&D)가 새로운 연구의 주류로 등장하게 됐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거대 실험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공유하며 협동 연구를 통해 놀라운 과학적 발견을 이루어내고 있다.

1964년 피터 힉스에 의해 가설된 힉스 입자는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 연구를 통해 그 존재가 관찰되었는데, 이 연구에는 40개국 172개 기관, 3,000명의 연구진이 참여했다. 하나의 거대 연구 장비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함께 공유하며 분석하여 이루어낸 쾌거다. 2016년에는 20개국, 67개 기관, 1,000여명의 연구진이 초당 2.4 페타바이트로 쏟아지는 대용량 관측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아인슈타인이 이론적으로 제시한 중력파를 최초로 관측하기도 했다.

방대한 실험・관측데이터로부터 출발하는 데이터 중심 연구는 필연적으로 인공지능을 R&D 영역으로 소환하고 있다. 영국의 데이터 전문회사인 GlobalData가 2019년 제약전문가 1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8%가 디지털 전환이 신약개발에 가장 유익한 방법론을 제공할 것이라 응답했다. 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향후 2년 간 신약개발 분야에서 파괴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답했다.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의 단백질 구조 분석 인공지능 알파폴드는 지난 11월 개최된 이 분야 인공지능의 성능을 겨루는 CASP 대회에서 100점 만점에 90점을 받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재넛 손튼 박사는 “염기서열을 통한 단백질 구조 예측 분제는 내 평생 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문제”라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EU에서는 디지털 전환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여 ‘Shaping Europe’s Digital Future’ 정책을 핵심 아젠다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디지털 관련 직업 진출의 확대로 EU의 연간 GDP가 160억 유로 증액 효과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며, 이를 장려하기 위해 디지털 젠더 고정 관념을 타파하고, 여성에 대한 디지털 기술 및 교육을 촉진하며, 더 많은 여성 기업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장려하고 있다. 특히 WiD (Woman in Digital) 지수와 DESI(Digital Economy Social Index) 지수 사이에 강한 상관 관계가 존재함을 주목하며, 여성의 디지털 적응 지수의 리더 국가가 디지털 경쟁력을 주도한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유럽의 디지털 전환, 여성 디지털 능력 강화에 힘쓰고 있음에도, 정보통신 분야의 젠더 갭은 여전해서, 정보통신 전문가 중 17%만이 여성이고, 이들마저 남성 대비 19% 낮은 급여를 받으며, 디지털 관련 기술 습득력도 남성 대비 11%가 미흡하다고 조사되었다. 특히 디지털 관련 기술 습득력은 기술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그 차이가 커졌으며, 55세 이상의 경우 남성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주인공이 되려면, 우선 디지털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포브스지는 ‘미래에는 어떤 직업이 뜰까?’라는 기사를 통해 디지털 전환시대를 맞아, 현대인이 습득하여야 할 능력을 3C로 정리했다. Coaching, Caring, Connecting으로 표현되는 3 C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인간적인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 중 Connecting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뿐 아니라 사람과 기계의 연결도 포함하고 있어, 디지털 문해력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능력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가 인텔과 협력해 '빅데이터 분석 및 AI 기반 여성 전문인력 양성' 사업을 진행하는 등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여성과학기술인력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COVID-19 팬데믹은 우리 사회 전반에 디지털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고, 이는 연구개발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비대면이 일상화가 된 지금, 대표적인 비대면 연구인 데이터 중심 연구에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연구와 육아를 병행하여야 하는 여성 과학기술인들에게는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재택근무를 통해 할 수 있는 연구의 범위는 한정적이고 집에서 연구는 물론 육아까지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는 데이터 중심 연구는 큰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데이터 중심 연구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연구에도 역시 디지털 문해력이 필수적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연구환경에서 여성연구원들이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데이터 중심 연구의 핵심인 데이터를 상호 공유하고 어디에서든 활용할 수 있도록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한선화
김영보 기자
kim.youngbo@kukinews.com
김영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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