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자치, 30년… 허점투성이 제도·의식 바뀔까

[기획] 지방자치, 30년… 허점투성이 제도·의식 바뀔까

지방자치법 전면개정, 주민자치를 향한 첫걸음? 무늬만 주민자치 말하는 죽은 규정?

기사승인 2020-12-14 05:00:16
지난 9일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켜 지방자치의 전기를 마련했다. 사진은 특례시가 된 창원시의 선전문구. 사진=연합뉴스

[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30년 만에 ‘주민참여’의 개념이 전격 도입된다. 국회는 지난 9일 본회의를 열고 주민참여를 확대하고 지방의회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거친 후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그럼 과연 기초자치단체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기초지방자치단체 및 기초의회, 그 일원의 일탈은 계속됐다. 작게는 업무시간에 사우나를 가거나 텃밭을 가꾸는 등 개인적 일탈이, 크게는 개인의 사익을 위해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횡령을 일삼은 일도 있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성비위 사건이나 불륜, 인권유린 행동들도 벌어졌다.

가깝게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처럼 성비위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 중앙언론에 알려진 것이 올해에만 5~6건에 달한다. 이밖에도 자신의 외제차 수리비와 주유비를 공금으로 지불한 강동구의회 전 의장이나 코로나19(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3차 유행이 시작된 11월 초·중순경 주민세금으로 외유성 나들이를 다녀와 감염확산우려를 키운 기초의회도 수두룩하다.

◇ 코로나 시국에도 외유성 나들이 다녀온 서울 기초의회만 12곳+α(알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 25개 기초의회의 워크숍 및 교육·탐방 일정 중 외유성으로 의심되는 활동을 한 기초의회는 답변기한 연장을 요청해 확인하지 못한 강남구의회를 제외하고도 절반인 12곳에 이르렀다. 송파구의회는 지난 1월 9일부터 12일간 두바이와 그리스, 터키 등지를 순회한 해외 탐방을 다녀왔고, 이후로도 전남·경북·충남·강원 등지를 6번에 걸쳐 다녀왔다.

코로나19 3차 유행이 시작된 11월에 제주도와 강릉 등 관광지를 돌아다닌 곳도 많았다. 앞서 언급한 송파구는 11월 9일부터 13일까지 각 위원회별로 1박2일 동안 강원 삼척, 충남 부여, 충남 태안을 ‘사례연구’ 등을 위해 관광지 등지를 다녀왔다. 강동구의회와 강서구의회, 금천구의회 등도 11월 초중순경 ‘교육’을 명분으로 제주도 워크숍을 진행했다.

비슷한 시기 관악구의회는 문화탐방을 명분으로 강릉과 삼척 등지를, 서초구의회는 직무역량강화를 이유로 속초와 횡성 등지를, 강서구의회는 소통 및 공감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남해를 찾았다. 양천구와 마포구 의회는 따로 여수와 통영일대를, 광진구의회는 문화탐방이라며 구례군 일대를, 중구의회는 안동과 포항, 영덕 등지를 돌아다녔다. 

국민의힘 세종시당 소속 정치인들은 지난 9일 세종시 조치원역 광장에서 부인·모친이 각각 조치원읍 토지를 매입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소속 세종시의회 김원식 시의원과 이태환 의장, 카드 게임장을 방문하면서 코로나19 출입자명부를 허위로 작성해 논란이 된 안찬영 시의원의 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소요된 예산만 의회당 적게는 400여만원에서 많게는 4300여만원에 이르렀다. 대부분 10명 내외의 인원이 2박3일의 외유성 행사 1번을 다녀오기 위해 1000만원에서 2000만원을 사용한 셈이다. 이들 12개 기초의회가 사용한 세금 기반의 공적자금은 모두 합치면 2억원을 훌쩍 넘었다. 

더 큰 문제는 세금으로 ‘관광’에 가까운 외유를 다녀온 것도 문제지만, 이를 덮으려하거나 당당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의 인식이라고 지적된다. 

한 기초의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구의원이 “여·야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기초·지방의회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코로나 시국임에도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곳도 다녀왔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말을 전해들은 한 시민은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주민의 대표로 의회에 앉아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또 다른 시민은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보다 ‘어떻게 알았냐’며 제보자를 색출하려하고 ‘문제없다’는 반응을 내놓는 이들에게 더 큰 권한을 줄 경우 부작용은 심각해질 것”이라며 “생업에 떠밀려 제대로 된 인물을 뽑지 못한 주민의식도 키우고, 이들을 견제하고 관리·감독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방안도 마련해야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전문성이나 소명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한 공무원은 “규칙과 조례 제정의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구분을 못하는 의회와 지자체의 행태가 만연하다”며 “지방의회 의원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은 일이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중앙에서의 검증에도 제도적·물리적 한계가 있어 어렵고, 언론의 관심에서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견제도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 32년만의 전면개정… 권한은 줬지만 기반은 없는 주민참여 “아쉽다”

그렇다면 지난 9일 국회가 ‘주민참여’ 개념을 확대도입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으니 변화가 따라올까? 개정법에 따르면 2022년 중에는 주민이 기초자치단체와 지역의회의 활동을 직접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각종 소송 및 청구 권한이 보장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을 두고 ‘지방자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딛었다고 환영의사를 전했다.

울산시의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조례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사진=울산시의회, 연합뉴스

김순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으로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됐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과 확대된 자율성은 지방의회 정책 능력을 높일 것”이라며 “추가적인 입법과정을 거쳐 설치될 중앙·지방 협력회의는 지자체를 국정의 동반자로 격상시킬 것”이라는 뜻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의견을 종합하면, 각종 비리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30년 동안 잘못된 관행과 의식이 뿌리내려 개선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들은 개정법을 두고 “결과를 유추하긴 아직 이르지만 크게 바뀌는 것도 없을 것”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공통되게 내놨다.

분명 지방자치에 주민의 직접참여에 대한 개념이 추가되며 중심이 지자체와 의회에서 주민으로 조금 이동했지만, 주민도 지자체도 의회도 얼마나 적극적일 것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주민소송이나 청구권을 보장하지만 제도차원의 지원 없이 일개 주민이 감시나 견제의 주체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도 지배적이다.

한 시민사회 관계자는 “말이 좋아 주민청구고 주민소송이지 일개 개인이 기초단체나 의원을 상대로 소송과 청구를 하기가 쉽겠냐. 선언적 의미 말고 실현될 여지는 적다.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 다는 것”이라며 “지자체장과 의회에 더 큰 권한을 주는 만큼 이를 견제하고 감시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별도로 마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1995년부터 구의회와 시의회 의원에 이어 기초단체장 등을 수차례 역임한 후 21대 국회에까지 입성한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행정안전위원회)은 “지방의 자치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바람직한 방향이고 변화”라면서도 “주민자치회의 개념이 법안에 포함되지 못한 점이 다소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분명 주민참여의 기회와 권한이 확대돼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주민모임의 법적근거가 마련되지 못해 아쉽다는 취지에서다. 이 의원은 “주민자치권이 대폭 보강되며 주민자치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활성화돼야하는데 그런 점이 좀 미흡하다. 추가 입법을 통해 이런 부분이 보완돼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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