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피해자들의 상처도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났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출범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2년의 활동기한을 마무리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규명해야 할 진실이 여전히 적재해 있다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오늘도 진상 규명을 외치는 이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다 끝난 일 아니냐고요? 저도 얼른 떨쳐버리고 편히 쉬고 싶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유선 인터뷰로 이야기를 나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52)씨가 입 밖으로 힘겹게 터트린 첫마디다. 오랜 시간 보상을 외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따갑다고 그는 말했다.
악연은 길다.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이 도마에 오른 지 약 10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 규명에 나선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2008년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사용했다. 가습기를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홍보 문구를 믿고 마트에서 구입한 가습기살균제를 매일 가습기에 넣고 얼굴을 향해 틀고 잠에 들었다. 이상증세는 이듬해 가을쯤 발현했다. 조씨는 한 달 동안 내내 기침에 시달렸는데, 발작이 일어날 정도로 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같은 해 12월 병원에서는 폐와 호흡 기능이 38%에 불과하다는 진단과 상세불명의 천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2011년 5월에는 6명의 환자가 폐섬유화로 숨지면서 같은해 8월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로 폐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후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 됐다고 알려졌다.
정부는 처음 조씨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4단계 판정으로 가습기살균제와 천식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년을 정부와 싸운 뒤에야 조씨는 천식 질환을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환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 조씨는 중증천식, 비가족성 저감마글로불린혈증을 앓고 있다. 폐렴, 부비동염 등의 합병증도 지속하고 있다.
조씨의 가습기살균제 투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천식을 앓게 된 피해자들에게도 배보상을 지급하라고 지난 2019년 3월 소송을 제기했는데, 첫 공판이 이달 중순 열렸다. 그는 “옥시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뒤 첫 공판이 2년이 흐른 뒤에야 열렸다. 몸 상태는 악화되고 있어 장기전이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공판을 준비하면서 피해자를 대하는 무성의한 기업 태도에 실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공판 전 법원의 조정 신청이 있었다”며 “조정에는 피고(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 변호사들만 자리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안을 내놓으라는 질문에 피고 측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며 “기업들은 당시 아무 대안 없이 피해자들을 맞이했다. 당일 이전까지 가해기업들은 만나 협상에 대해 서로 협의할 의지도 없었던 것 같았다. 진전 없는 법적공방으로 시간끌기 전략 아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배보상이 피해자들에게는 시급한 상황”이라며 “가해 기업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기업 간 협의체를 구성해 공동 대응 체계를 만들고 활발히 의논하는 것이 지금은 중요한 시점 아니겠냐”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은폐하려는 기업들의 정황은 기대조차 저버리게 한다. 조씨는 “참사를 만든 기업들의 과정을 보면 사실 이같은 사실은 놀랍지도 않지만 배보상이 제대로 이뤄질까, 소송이 의미 있는 일인가 의구심이 든다”며 “일말의 책임감이 있다면 전면에 나서 피해자들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부터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10월13일 사참위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소속 직원들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서 피해자로 사칭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사참위 발표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2019년 가습기살균제 항의행동 밴드 실명제 전환과정에서 피해자가 아님에도 피해자라고 속여 지속해서 게시글을 열람했다. 제3자 명의를 사용해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사참위는 피해자 및 피해자단체 동향을 파악해 업무를 방해 협의로 검찰에 수사요청서를 제출했다.
사참위 활동기한 종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더 절망에 빠트린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사참위 출범 이전과 후로 크게 분위기가 달랐다”며 “이후 가해 기업들도 참사에 대하는 의지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실감하고 있는데 사참위가 사라진다면 기업 스스로 진상규명 의지를 보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앞으로 가습기살균제 진상조사는 환경부가 담당하지만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피해자 입장이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통 과정에서 정부는 이를 예방하지 못했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 연결고리에 있는 환경부도 진상조사의 대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씨는 “환경부도 피해자에게 신뢰를 잃어버린지 오래”라면서 “현재 의지할 곳 없이 낙담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사참위 활동 연장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조씨는 “가습기를 사용한 뒤 폐질환을 앓다 돌아가신 분들이 아직도 많다”며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병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고, 피해를 증명하기 위한 피해자의 싸움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사참위가 문을 닫기에는 아직 규명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며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이 내년에는 속히 제정돼 명명백백한 수사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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