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정부가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 손보기에 나섰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비급여 항목의 관리를 강화하고 실손의료보험 상품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 관련 도덕적 해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도수치료’ 이용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의학적 필요에 의해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료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하게 진료를 유도하는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실손 청구할수록 보험료 높여…“아픈 환자만 부담”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달 24일 ‘공‧사보험 정책협의체’를 개최하고 건강보험 비급여관리 강화방안, 실손보험 상품구조 개편 등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실손 가입자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비급여 특약 분리, 비급여 의료이용에 따른 실손보험료 할인·할증제 도입 등을 추진키로 했다. 쉽게 말해 비급여 진료비 청구를 많이 한 사람의 보험료를 올리기로 한 것이다. 복지부는 비급여 분류 체계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범위 확대(병원급→의원급) 등을 담은 ‘비급여관리강화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일부 네티즌들은 의사 권고대로 진료 받는 환자만 억울한 상황에 처해졌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실손보험은 아파서 병원 갈 때 도움 되려고 들은 것”이라며 “왜 가입자에게 부담을 주느냐. 오히려 병원에서 실비 있냐고 물어보고 진료 보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비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싫어하는 티를 내기도 한다. 아픈 입장에서는 약자이니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 아프니까 가는 거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네티즌들도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이다. (보험료가) 인상되면 안 된다”, “아파서 받은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자들의 부담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근골격계 환자들은 통증 완화를 위해 도수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 효과에 대한 개인차가 크고 적정 치료 가이드라인도 없어 의사의 권고대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수치료가 일종의 도덕적 해이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도 일부 병원에서 이러한 사실을 이용해 실손보험 가입자들에게 과잉‧허위 진료를 유도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충돌증후군을 앓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뭉친 근육을 풀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1주에 2번씩 도수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3개월간 치료를 받았다. 진료비 부담이 커지니 당연히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려고 보험에 가입했는데 만약 거기에 제한을 건다면 억울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도수치료) 횟수제한 때문에 치료를 중단했다가 증상이 악화돼 다시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했다가 나중에 더 아파지면 어떻게 하느냐. 지금 젊은 나이에도 통증이 너무 심한데 나이가 들면 감당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 효과 입증된 비약물적 치료법…‘공장 병원’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검증된 의료진만 도수치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일명 ‘도수공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무분별한 진료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골격계 질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치료’의 접근성을 낮춰선 안 된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에 있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B씨는 “근골격계 질환도 골든타임이 있는데 초기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다”며 “다만 치료 질을 높이기 위해 조금 더 검증된 사람들만 도수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현동 대한도수의학회 총무부회장은 “도수치료로 치료기간이 단축되면 보험재정도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의료이용을) 누르려고 하는 것은 물리치료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도수공장들 때문”이라며 “(도수치료 관련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환경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도수공장을 제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총무부회장은 “도수공장에 있는 물리치료사는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환자 호응을 위해 뼈소리를 내려고 과도하게 목 등을 꺾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잘못 누르면 오히려 통증이 악화될 수 있고 심하면 골절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위험한 테크닉은 의사가 해야 하는 게 맞다. 환자안전과 과징진료를 막기 위해 일정 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의사가 직접 하거나 물리치료사에게 지시 감독을 해야 하고, 도수공장은 사라져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학회 차원에서 환경 정화를 위해 도수치료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반대가 있었다. 학회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지만 보험사 등에서 자문을 요청한다면 자정화 노력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김범석 고려대 구로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삶의 질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도수치료는 꼭 필요한 치료다. 이미 미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비약물적 치료로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면서 “예를 들어 90세 가까이 된 노인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함부로 수술 등 다른 치료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진통제만 먹을 순 없다. 도수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환자는 그에 맞춰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급여 규모 연평균 증가율 7.6%
한편, 국민 상당수는 실손보험 가입을 통해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가입자는 3800만명으로 인구대비 약 73% 수준이다.
그러나 비급여 진료에 대한 사회적 통제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실손보험 보장으로 가격 의식이 완화되며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비급여 진료규모는 총진료비 103조3000억원의 16.1%인 16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의료기관별 진료비 편차도 큰 상황이다. 지난해 근골격계 관련 도수치료 1회 비용은 병원급 기준 최저 5000원~최고 24만원 차이가 발생했다. 비급여 유형별로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의 치료나 신체적 필수 기능개선을 직접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진료로서 의료소비자의 선택에 의한 ‘선택적 비급여’ 비율이 높았다.
2018년 비급여상세내역 조사 결과를 보면, ▲선택이 44.5%로 가장 많았고 이어 ▲등재(의학적으로 필요한 의료이나, 비용효과성 등 진료상의 경제성이 불분명한 경우) 26.7%, ▲기준(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돼 있으나 횟수 등 실시기준을 초과해 비급여로 적용되는 항목) 23.1%, ▲제도(상급병실료차액, 선택진료비 및 제증명수수료로서 관련 제도적 규정에 따라 비급여로 정한 경우) 5.7% 순으로 나타났다. 요양기관 종별로는 의원급에서 선택적 비급여 비중이 높았다.
비급여 진료는 가계 의료비 부담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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