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은빈 인턴기자 = 과거 ‘안철수 신드롬’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에 이번엔 서울시장 선거 때까지 우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중도‧보수층 선택은 일단 안철수… 신드롬 재현되나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지난달 19~20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5%p), 안 대표는 17.4%의 지지를 얻으며 조사상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2위인 나경원 전 의원이 16.3%로 따라붙으며 경합을 벌이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안 대표는 범야권 후보 중 10~20대(22.1%)와 중도층(19.2%)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나 전 의원의 경우 60대 이상(27.1%)의 유권자와 보수층(29.4%)에선 우세한 반면 10~20대(9.4%)와 중도(14.7%), 진보(14.5%) 성향 유권자에게는 열세를 보였다.
여권 후보를 포함한 입소스나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SBS의뢰로 지난해 12월 31일과 1월 1일 조사해 3일 발표한 입소스의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5%p)에선 안 대표가 24.1%의 지지율로 1위다. 2위인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15.3%)과는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큰 차이를 보였다. 같은 조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9.5%,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6.8%를 기록했다.
YTN과 TBS 의뢰로 지난해 12월 29일과 30일 양일간 조사해 4일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95% 신뢰수준에 ±3.1%)에서도 24.9%의 지지율로 안 대표가 박 장관(13.1%)을 2배 가까운 격차로 따돌렸다. 조사에 따르면 나 전 의원은 10.7%, 오 전 시장은 9.2%의 지지를 얻었다. 각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조사개요 등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입소스와 리얼미터 조사에서 안 대표는 보수층(각각 36.2%, 35.2%)과 중도층(27.7%, 27.2%)의 선택을 받은 반면 진보층(13.2%, 13.6%) 유권자에 대해선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진보층은 박 장관(29.3%, 25.4%)을, 보수층은 오 전 시장(16.2%, 11.9%)과 나 전 의원(13.4%, 23.6%)을 지지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정치성향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더구나 여론조사별로 일부 수치의 차이는 있었지만 안 대표의 지지율은 대체로 20%대에서 연령‧지역별로 고르게 나타났고, 박 장관도 10%대의 고른 지지율을 보였다는 점에서 해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다만 나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은 60세 이상의 유권자에 우세하고, 청년세대에겐 열세였다.
이처럼 안 대표가 지지율 1위를 싹쓸이한 것에 대해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안 대표에게 높은 선호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안 대표의 당선엔 중도층의 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과거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신드롬’도 양극단의 정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 생긴 현상이었던 만큼 신드롬의 재현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과거) 당선까진 이어지지 못한 신드롬… 이번에도?
안철수 신드롬의 절정은 2012년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서다. 그는 ‘진보냐 보수냐’라는 물음에 “굳이 얘기하면 상식파”라고 답했다. 이어 “상식과 비상식을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비상식적인 것을 하지 않게 민의를 모아 방지하고 비상식적 일을 하면 법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흑백논리가 지배해온 정치권에 컬러가 등장한 듯한 충격을 줬고 안철수의 색이 정치권에 덧칠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2012년 9월 19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는 안 대표가 ‘소통과 미래의 가치’를 강조해 기성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줬다. 이에 정치적 이익만을 취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사회에 대한 신념을 실현하는 정치인이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기대는 당선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과거 선거를 돌아보면 안 대표는 뒷심이 부족했다. 결과는 늘 초반 성적보다 못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때 안 대표는 가상대결에서 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앞서며 2위에 올랐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지지율은 떨어졌고, 최종 3위로 낙선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선거 1달 전까진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박빙의 대결을 펼쳤다. 그러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했고 결국 본선에선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까지 밀리며 ‘만년 3등’이란 오명을 얻었다. 전문가들이 현재 지지율 1위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이유다.
게다가 지지율이 10~20%대로 들쭉날쭉한 것을 두고도 전문가들은 “당선 안정권에 안착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인다. 여야 모두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는 후보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 반사효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직 거대양당의 지지층 결집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추후 변화가 있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따라서 정치권 일각에선 안 대표가 선거 막판까지 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순수함과 신선함은 간직하되 ‘갈지(之)자 행보’는 버리고, 보다 선명한 정치이념을 보여 여론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 대표가 여전히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인물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제기한다. 지난 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8년 동안의 정치에 대해 돌아보며 “38석에 달하는 당도 창당해서 만들어봤고, 그런 경험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이후엔 저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력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한 것이 근거였다.
이를 두고 “‘새 정치’를 기대하던 유권자들에겐 다소 아쉬운 답변”이란 평가가 따랐다. 지난 8년 동안의 정치행보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자칫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줘 ‘헌 정치’를 펼 것이란 인식을 심어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 3석에 불과한 소수 원내정당의 대표라는 점도 정치력 증명 측면에서 약점으로 꼽힌다.
◇(미래) 불통 이미지, 박원순 책임론 딛고 재기 가능할까
그럼에도 안 대표가 지금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안 대표와 함께 일했던 옛 동료 장진영 변호사와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안 대표의 낙선을 전망했다. 안 대표의 가장 큰 단점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소통능력’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장 변호사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철수와 함께 일해 본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이 말하는 치명적인 문제는 ‘소통’”이라고 직격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아쉬울 때만 소통을 한다. 그건 소통이 아니라 임시변통할 때 그 변통”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금 전 의원도 8일 BBS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안 대표를 향해 “‘안철수 현상’ 이후 10년이 흘렀는데, 지금 보면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정치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아쉽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또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할 때 당내에서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알려준 게 없다. 대표 혼자 결심해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합의가 있어야 되는데, 기업 경영할 때 마인드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아닌가”라며 당 대표로서 갖춰야 할 소통의 리더십 부족을 문제삼았다.
서울시장 출마 자격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의 문제에 대한 책임이 안 대표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성비위 사건으로 인한 시정공백의 책임은 일차적으로는 그(박 전 시장)가 속했던 민주당이겠지만, 이런 인물에게 시장 자리를 양보하고 지지한 안 대표도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도 변수 중 하나다. 야권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경우 소수정당의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기 때문에 안 대표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으로 입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중도층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진퇴양난인 셈이다. 이에 서울시장 선거당락을 가를 안 대표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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