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이들은 크게 줄어든 반면, ‘존엄한 죽음’을 결정한 사람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2월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제도)이 시행된 이후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고 결정한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말기 또는 임종기환자를 대상으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는 2019년 대비 약 106% 증가했으며,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이행 건수도 약 114%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도별로 보면, 연명의료계획서 건수는 2018년 1만4593건, 2019년 2만840건, 2020년 2만2079건으로 늘었고, 실제 연명의료중단 등을 이행한 건수는 각각 3만1765, 4만8238, 5만4942건 등으로 집계됐다.
유의미하게 볼 부분은 환자 본인이 의식을 갖고 스스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건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간 환자의 의지가 아닌 가족의 의지로 연명의료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아 ‘존엄사 문화’ 정착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중단 등을 이행한 건수는 2018년 9020건에서 2019년 1만7172건, 2020년 1만8167건으로 증가해 총 4만4359건으로 집계됐다. 환자의사확인서(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한 이행 건수는 같은 기간 227건에서 1095, 2745건으로 크게 늘었다. 또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인 경우 환자의 가족이 대신해 의향을 전하는 ‘환자가족진술서’는 매년 8737건, 1만7049, 1만8805건으로 늘었다. 이는 환자 본인이 의사를 표현한 구체적인 서류가 있거나, 환자의 의사를 추정한 것이므로 자기 결정에 의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사례로 분류된다.
이와 달리 가족의 의지로 연명의료를 중단(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인 경우)하는 ‘친권자 및 환자가족 의사확인서’는 1만272, 1만6431, 1만5225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9년 말 월 5000건가량 등록되기도 했으나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지난해 3~4월에는 월 2~3000건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후 20000건 내외로 증가했다가 코로나가 재확산되자 다시 감소세를 반복했다. 이에 누적 작성 건수는 2018년 10만529건에서 2019년 43만2138건, 2020년 25만7526건 등으로 나타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나중에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다만,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법적으로 유효한 서식이 된다. 국생원 관계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복지부에서 지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1:1 대면상담 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작성 희망자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인프라 확대를 추진했다. 코로나 확산이 완화되면 등록 추이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지난해 82개소가 추가 지정돼 전국 243개 기관이 운영 중이며, 그중 지역보건의료기관(보건소)이 64개소 신규 지정돼 현재 120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인식은 확산되고 있다. 매년 실시되고 있는 대국민 인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74.9%에서 2020년 91.9%로 크게 향상됐다. 또 올해 1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총 80만5734명으로, 19세 이상 성인 100명 중 약 2명이 의향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제도에 대한 종사자 및 대국민의 인식개선과 인프라 확대가 필요하다. 국생원 관계자는 “종사자와 대국민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홍보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공중파 방송을 통한 광고, 다양한 계층을 타겟으로 하는 SNS 운영 등 집중적인 홍보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이 충분치 못하다”며 “또 제도 시행 초기에 비해 관련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인프라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는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한데 종합병원이나, 요양병원 중에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은 기관이 많다. 인센티브 확대 등을 통해 제도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기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 의료기관은 총 297개로, 작년 기준 상급종합병원의 등록률은 100%에 달했지만 종합병원은 9.4%, 병원급 의료기관은 1.4%, 요양병원 4.3%에 불과했다. 2018년, 2019년과 비교해도 각 기관의 등록률은 1% 내외로 증가했을 뿐이었다.
이 관계자는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간 사망자 중 75% 이상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연장을 위한 다양한 의학적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여생의 대부분을 보낸다”며 “의료기관과 등록기관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력 등 공적 지원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언젠가 맞이할 나의 삶의 마지막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의미 있는 확산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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