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쿠키인터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펴낸 유선애 작가

기사승인 2021-02-04 07:00:05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새롭게 다시 살고 싶다.’ 패션매거진 마리끌레르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하는 유선애 작가는 작년 초 이런 메모를 남겼다. 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인 황소윤을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그는 1990년대생 여성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내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고, 어떤 태도로 사고하며 행동할 것인지를 내 자신에게 질문한 적이 있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사람이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나 프로세스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지난달 18일 출간된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은 유선애 작가와 1990년대에 태어난 여성 10인의 대화를 엮은 인터뷰집이다. 예지, 김초엽, 황소윤, 재재, 정다운, 이주영, 김원경, 박서희, 이길보라, 이슬아 등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여성들의 귀한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 2~3년 사이 내가 강해졌다면 그건 1990년대에 태어난 여자들 덕분”(‘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프롤로그 중에서)이라는 유선애 작가를 최근 서울 월드컵북로 쿠키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Q. 책을 집필할 당시 출산을 앞둔 상태셨다고요.

“2019년 12월에 출산했어요. 출산 직전까지 대면 인터뷰는 다 마쳤고, 이후엔 서면과 전화로 문답을 주고받았어요. 예상보다 반 년 정도 늦게 책이 완성됐는데, 열 분 모두 너그럽게 기다려주셨어요. 출간된 지금은 긴 연애를 마친 기분이에요. 인터뷰이들을 오랜 시간 붙잡고 있었거든요. 만난 건 두세 번 뿐이었지만, 심정적으로는 가깝게 느껴져요.”

Q. 만난 횟수보다 어떤 대화를 나눴느냐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인터뷰이는 어떻게 정하셨어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여성들이 사랑하는 여성’이었어요. 프로젝트를 제안 받은 2019년 4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만난 모든 여성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열어놓고 생각했죠. 제가 직접 만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씬에서 두각을 드러낸 분들도 계속 주시했고요.”

Q. 특히 1990년대생을 주목하신 이유는 뭔가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990년대생 여성들이 만들어낸 페미니즘 운동이 있어요. 그들의 향상심이 제게도 영향을 줬어요. 한편으론 부채감도 컸어요. 저는 20대 때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목소리 내고 행동하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건지 잘 알잖아요. 그런 점에 주목하면서 1990년대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마침 1990년대생을 ‘밀레니얼’로 명명한 세대론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어떤 지점에선 불편했어요. 마치 전에 없던 신인류가 등장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그러겠어요. 전조와 징후가 있었겠죠. 단지 그건 읽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고요.”

Q. 책에선 이들을 ‘자기 삶의 단독자로 선’ 사람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자력으로 혼자 선 사람들이죠. 다만 단독자라는 것이 홀로 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개인으로 서 있되,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 내 앞에 옆에 뒤에 누가 있는지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지요.”

Q. 목차는 어떻게 꾸리셨나요?

“순서가 중요했어요. 인지도 순으로 나열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특히 맨 처음과 마지막은 반드시 예지 씨와 이슬아 작가님으로 넣으려고 했어요. 첫 편에는 한국 사회와 한국 사회가 아닌 곳을 모두 경험한 사람(예지)의 시야를 담고 싶었어요. 인종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도 포괄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요. 이슬아 작가님이 마지막에 나와야 했던 건, 작가님이 마지막에 해준 ‘회복의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 때문이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책장을 덮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Q. 흔히 페미니즘 등의 사회 운동엔 ‘투쟁’이나 ‘극복’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데, 책에선 ‘사랑’이 강조된다고 느꼈습니다.

“초반엔 제가 느꼈던 향상심을 고조하는 쪽으로 기획했어요. ‘우리에겐 무한한 힘이 있다. 그 힘을 나눠 갖자’ 하는. 그런데 힘에서 시작한 대화들이 종국에는 ‘사랑’ ‘연결’로 이어지더라고요. 제가 유도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속한 듯이.”

Q. 작가님에게도 주변인들과의 연결과 사랑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

“이 책을 기획할 때나 매거진에서 여성 특집 기사를 진행하면서도, 계속 제 자격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이 책에 적합한 인터뷰어가 아니라는 생각이 내심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극복하게 하는 게 결국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이들이 보내주신 믿음이 ‘당신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꼈거든요. 책을 쓰면서 저도 인터뷰이들에게 용기를 배웠어요.”

Q. 자격에 관한 이야기는 모델 박서희 씨와의 인터뷰에도 언급돼요. 인터뷰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패션 잡지가 어떻게 페미니즘을 실천해오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타깃 독자가 20·30대 여성들이라는 점이 도움이 돼요. 아주 작은 쪽기사를 쓰더라도, 내 동년배 여성들이 뭘 원하고 무엇에 관심 있고 하다못해 뭘 소비하는지까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그들이 변하기 때문에 저 역시도 배우고 깨우치는 게 많아요. 예전에 여성 패션 잡지에서 자주 하던 기획들, 가령 ‘남자들이 좋아하는 메이크업’ 같은 기사를 쓰면 ‘아직도 이런 기사가 나오네’ 하는 피드백이 와요. 에디터들끼리도 ‘최소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요. 성문화된 지침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진의 앵글이나 방향, 포즈 같은 것에 있어서 ‘이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저희 안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어요.”

Q. 인터뷰를 준비·진행·정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무엇이었어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어요. 각자 가진 귀중한 생각과 신념을 나눠주는 일이니, 더욱 신중해야 했어요. 인터뷰 후에 생각이 달라졌거나 더 정리됐을 수 있어서, 원고를 두 세 차례 주고받으면서 보강해나갔어요. 또 인터뷰이 각자의 작업물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속한 산업과 그 안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해서는 듣고 싶었어요.”

Q. 각기 다른 열 명의 인터뷰지만, 이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문장이 있겠죠.

“제가 쓴 글 중에 ‘씩씩하거나 수줍거나, 경솔하거나 진중하거나, 침울하거나 호탕하거나, 그 무엇일 수도, 무엇이 아닐 수도 있는 여자들이 거기에 있다’는 문장이요. 독자들에게 ‘이렇게 다르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방식으로 즐겁게 자기 삶을 잘 꾸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Q. 직장생활을 하는 입장에선 “돈 때문에 싫은 내가 돼야 하는 일은 절대 안 하려고 한다”는 정다운 감독님을 닮고 싶었어요. 인터뷰이 열 분 모두 자신의 존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 대단해 보였어요.

“한편으로는 이 여성들이 마냥 특별하게만 보일까봐 걱정했어요. ‘저 사람들은 남다른 재능이 있으니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들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새롭게 배우고 깨우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기 위해 큰 용기를 냈다는 점이 특별하지만, (독자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Q. 여성들의 이야기를 큰 목소리로 계속해서 전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슬아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이 책이 10대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좋겠대요. 이렇게 다양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성장할 때는 몰랐던 거죠. 그런데 1990년대생 이후의 세대들이 이렇게 다르게 사는 언니들, 대학교에 가지 않고도 행복한 언니들, 자기 것을 잘 만드는 언니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알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Q. 더 많은 여성들을 비출수록 사회가 더 다양한 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작가님은 타인과 연결돼 있음을 언제 강하게 느끼세요?

“기사를 낼 때가 가장 그렇죠. 이 책의 출발점이었던 ‘90년생 여자 사람’(마리끌레르 2019년 3월호) 특집 기사를 내고 난 뒤에, 여성 독자들이 기사 속 공통 질문에 자신의 답을 써내려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것이 연결이라면 내가 좋은 연결을 만들 수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열 편의 인터뷰에서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작가님이 대답한다면요?

“번번이 실패해도 떨치고 일어나 회복하는 여자들이요.”

Q. 우리가 사랑할 내일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세요?

“내가 나인 이유로 혹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정의내리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wild37@kukinews.com / 사진=한겨레출판사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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