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직영화·직접고용 전환 채용’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민주노총)에 따르면, 건보공단 고객센터 상담원들은 실적 압박,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작업환경의 개선이 전적으로 공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공단의 고객센터 직접 운영을 통해 전반적인 관리시스템의 전면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현재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매일 콜수를 채우기 위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등 직무요구도가 매우 높은 반면 업체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녹화감시 때문에 직무자율성이 낮다”며 “또 1일 평균 120콜의 의미는 고객센터 노동자 1명이 하루에 응대해야 하는 고객의 수와 같다. 많은 고객을 응대할수록 더 많은 불만과 언어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감정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8월 26일~31일간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 796명이 응답한 설문 조사 결과, 이들의 1일 평균 콜수는 120콜 미만이 36%로 가장 많았고, 140콜 미만이 29.6%, 140콜 이상은 10%로 나타났다. 콜 처리 건수는 업무평가의 중요한 기준이다. 이에 점심시간을 제외한 1일 평균 휴게시간은 30분 미만이 90%이상으로 나타났으며, 10분 미만도 33.7%나 됐다. 콜센터 근로자의 직무스트레스 관리 지침(H-31-2011)에서 직무스트레스의 조직적 관리방안으로 1시간마다 5분의 휴식 또는 2시간마다 15분의 휴식을 권장하지만,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매일 콜수를 채우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또 업체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녹화감시 때문에 필요할 때 충분히 쉴 수 있는 휴식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중 99.4%는 근골격계 통증을 앓고 있었고, 85%는 ‘우울증 위험군’으로 나타나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우울증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근무 중 또는 업무로 인해 고객, 관리자, 동료, 공단직원으로부터 무리한 요구, 인격무시 발언, 욕설, 성희롱 등의 업무상 괴롭힘을 경험하는지 설문한 결과, 무리한 요구 경험 여부는 고객으로부터 93%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공단직원으로부터는 29.4%, 관리자로부터는 22.6% 순이었다.
인격무시 발언에 대해서는 고객으로부터 87.2%, 공단직원으로부터 53.9%로 높게 조됐었고, 욕설 경험도 고객으로부터 81%로 높게 나타났으며, 성희롱의 경험도 고객으로부터 14.4%(115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관리자와 공단직원으로부터 받는 직장내 괴롭힘도 무리한 요구는 5명 중 1명, 공단직원으로부터 인격무시 발언의 경험은 2명 중 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공단이나 위탁업체 차원의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보호조치나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예방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민주노총은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공단은 고객센터의 업무에 필요한 장소 및 장비, 시설, 전산시스템 등 일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공단의 사번을 부여해 인사관리, 개인정보 등록 등 통합적인 노무관리를 기록하고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작업환경의 개선은 전적으로 공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동의 아웃소싱으로 인한 이윤창출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국가 제도로부터 소외받지 않도록 하는 공공성에 있다. 성과경쟁으로 치닫는 고객센터의 전반적인 관리시스템의 전면 개선과 고객센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공단 고객센터 직접 운영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성 훼손을 막고 양질의 상담을 위해 고객센터 민간위탁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하나 공단 고객센터지부 조합원은 “건강보험 가입자는 누구나 충분한 상담을 받을 권리가 있고, 건강보험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아니”라며 “하지만 상담사인 나는 본연의 업무인 상담을 하면서도 늘 긴장하고 조급해하며 자신감 없이 작아진다. 민간위탁업체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양질의 상담을 하기 어려운 구조임에 틀림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취업준비생들은 고객센터 직고용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4년차 공단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이 “많은 준비생이 스펙·역량을 쌓고자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공단 직원이 되고자 한다. 공정성과 형평성을 정부 입김으로 훼손시키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청원인은 “이전 채용공고문의 내용으로는 공단의 고객센터, 서울요양원, 건강증진센터 2년이상 근무하게 되면 서류전형에서 우대사항의 가산점이 주어진다. 이 가산점으로 인해 고객센터 직원들은 일반 취업준비생보다 다음 전형인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며 “공단은 공단의 소속기관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자에 대해 가산점까지 주며 충분한 대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객센터 직원들은 소속회사 내 ‘정규직’ 직원이다. 사기업의 정규직 직원들을 준정부기관에서 직고용 해줘야한다는 법의 근거도 없거니와, 그러한 근거가 있는 법률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단은 고객센터의 직영화·직접고용 전환은 공단 내‧외부의 반발과 부정적 여론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단 관계자는 “조직 운영상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며 “고객센터 직원에 대한 고용형태 결정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이는 공단 노조와 상담사 노조와의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후 직고용에 대해선 협의기구를 통해 진행할 것”이라며 “앞으로 공단은 상담사 인권과 처우개선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