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되는데 대중음악은 안 된다? [콘서트 잔혹사①]

뮤지컬은 되는데 대중음악은 안 된다? [콘서트 잔혹사①]

기사승인 2021-03-06 07:00:03
콘서트를 관람하는 관객들. 사진은 아래 내용과 관련 없음.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발생 이후 볕 들 날 없던 대중음악 공연계에 또 다시 고비가 닥쳤다.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시기가 묘연해지면서다. 거리두기 개편안을 기대하며 개최를 준비하던 공연들은 ‘줄취소’ 위기에 놓였다. 실제 그룹 몬스타엑스는 6일과 7일 서울 구천면로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열 예정이었던 팬 콘서트를 취소하기로 지난 3일 결정했다. 공연 장비 설치 하루 전 내려진 결정이다. 이달 중 막을 올릴 예정이었던 ‘내일은 미스터트롯’ 톱6 콘서트와 ‘싱어게인’ 톱10 콘서트, 가수 이소라 콘서트 등도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현행 거리두기 지침에서 대중음악 공연은 ‘집합·모임·행사’로 분류된다. 이에 따르면 1단계에선 공연 개최가 가능하고, 1.5단계에선 500명 이상이 모이는 공연은 지자체와 협의 후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2단계 이상일 때다. 각 단계에서 모객 가능 인원이 100명(2단계), 50명(2.5단계) 미만으로 제한된다. 기획사 입장에선 ‘열어도 적자만 나는’ 공연인 셈이다. 2.5단계 수준에서도 ‘동반인 외 두 칸 띄어 앉기’나 ‘한 칸 띄어 앉기’를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연극·뮤지컬·클래식 공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해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 10만여명이 다녀갔지만 확진자는 없었다.
정부가 지난달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가요계에선 대중음악 공연 정상화를 향한 염원이 커졌다. 대중음악 공연이 ‘집합·모임·행사’ 분류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새로운 거리두기를 3월 초부터 시행한다는 정부 발표에 따라, 3월 중순부터 ‘미스터트롯’ 톱6 전국투어 등 중·대규모 공연들이 재개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며칠째 일일 신규 확진자가 300~400명대에 머무르면서 업계 종사자들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결국 거리두기 개편안 시행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 오는 18일 개막하는 이소라 콘서트 등엔 ‘집합 인원을 100명 미만으로 제한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내려졌다. ‘대중음악공연 정상화를 위한 비대위’(이하 비대위)의 일원인 신원규 감독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거리두기 개편안이 언제 시행될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면서 “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면 우선 대중음악 공연 분류부터 풀어달라는 게 비대위의 요구”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대중음악 공연 매출은 90% 넘게 줄었다.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의미다. 신 감독은 “공연 기획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실질적으로는 매출이 99% 이상 준 것”이라면서 “대중음악 공연 분야는 사실상 전멸 상태”라고 말했다. 비대위의 또 다른 구성원인 인넥스트트렌드 고기호 이사 역시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여를 버텼다. 그간 음향·조명·영상 기술자 등 수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토로했다. 공연계 종사자는 물론, 홍대 인근에 터전을 잡은 소규모 레이블도 타격이 크다. 익명의 가요 관계자는 “인디 레이블 가운데는 직원을 모두 내보내고 대표 혼자만 남은 곳도 많다”고 했다.

대중음악 공연은 관객의 집단 가창과 함성 때문에 비말 전파 위험이 높을 것이라는 게 방역당국의 판단이었지만, 그간 대중음악 공연장에서 코로나19가 전파된 사례는 0건이었다. 지난해 거리두기 1단계에서 열렸던 ‘미스터트롯’ 서울 콘서트에는 총 10만 명이 다녀갔지만 확진자는 없었다. 가수 윤도현의 대구 공연에서 확진자가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지만, 추가 감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에 비대위는 지난 1월 발표한 대정부 호소문에서 “모두가 다 같이 어려운 지금, 특혜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방역 당국이 편견 없이 저희를 바라보고, 최소한 타 장르 공연과 같은 기준으로 집객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클럽 FF의 공연 취소 공지.
홍대 인근 라이브클럽은 사정이 더욱 좋지 않다. 지난달 27일 클럽FF를 비롯한 세 곳의 라이브클럽에서 개최하려던 공연이 직전에 취소되거나 도중에 멈췄다. 마포구청 측에서 갑작스럽게 해산을 요구해서다.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되고 있던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에 따른 유흥시설 및 음식점 등 방역조치 고시’에 따른 조처였다. 해당 고시는 일반 음식점 내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돼 단속을 나갔다가 방역지침 위반 사례를 적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대다수 라이브클럽은 시설을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해 운영하고 있다. 라이브클럽은 음료를 팔아 운영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설을 공연장으로 등록하면 맥주 등 일체의 주류를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라이브 클럽 내 음료 판매를 중단하고 시설 내 취식도 금지하고 있지만, 공연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다. 실제 대중음악 공연은 일반 음식점뿐 아니라 체육시설·전시장·야외시설 등 여러 시설에서 열리지만, 시설마다 단계별 세칙이 달라 공연 집객 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비대위가 “공연장 외 일반 시설에 대한 새로운 객석 지침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은 SNS에서 “공연 날 하루를 위해 몇 달을 준비한 뮤지션과 관객 모두에게 너무 잔혹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밴드 빌리카터와 데드버튼즈의 멤버인 김지원은 “공연예술가들은 그동안 국가적 재난과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생업을 위협받아왔다”며 “부당한 제재에 맞설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공연관련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픽사베이, 쇼플레이 제공. 클럽FF 페이스북 캡처.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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