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눈만 뜨면 오전 7시다. 남자는 아침부터 침대 위로 날아드는 칼날을 손쉽게 피한 다음 여유롭게 상대를 제압한다. 다음 일어날 일을 세세하게 전부 알고 있는 눈치다. 그렇게 피곤한 로이의 144번째 아침이 또 밝았다.
영화 ‘리스타트’(감독 조 카나한)는 알 수 없는 타임루프에 갇힌 로이가 정체 모를 킬러들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그렸다. 로이는 어느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이혼한 아내 젬마(나오미 왓츠)를 만난 다음 날 하루를 반복해서 산다. 수많은 킬러들이 왜 자신을 노리는지 모른 채 그는 죽고 같은 날 아침에 깬다. 100번 넘게 죽으며 어떤 킬러가 언제 어디에서 자신을 노리는지 알게 됐다. 나름대로 킬러에게 이름도 붙였다. 로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포자기하며 술을 찾는다.
‘리스타트’는 같은 날이 무한히 반복되는 타임루프 장르를 작품 전면에 내세웠다. 할리우드에서 타임루프는 낯선 장르가 아니다. 1993년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있었고 최근엔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해피 데스 데이’가 있었다.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으로 캐릭터 설명부터 극적 전개, 성장과 감동을 모두 보여준다. 최근엔 같은 지점에서 되살아나는 설정에 초점을 맞춰 게임 같은 매력을 주는 타임루프 영화가 많다. ‘리스타트’도 마찬가지다. 극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반복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레벨을 올리는 성장 액션을 보여준다. 영화의 원제도 ‘보스 레벨’(Boss Level)이다.
주인공이 악당들과 싸움만 하는 단순한 액션 영화는 아니다. 기존 타임루프물과 달리, 로이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조금씩 하루가 변한다. 그가 다른 선택(변수)을 하면 새로운 루트로 목숨을 위협당한다. 144번이나 죽어야 했던 이유다. 평범한 방법으론 다음으로 넘어가기 어려운 게임은 로이에게 창의적인 접근을 강요한다. 액션으로 시작한 영화가 코미디를 거쳐 가족 드라마와 로맨스로 변주되는 계기다. 장르가 소재 역할을 떠안자 새로운 장르가 빈 공간을 채운다. 예상하지 못한 장르가 등장하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양한 관객들이 만족할 작품이다. 액션에 시선을 뺏기며 생각을 최소화 하고 싶은 관객과 누군가의 삶을 보며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싶은 관객, 신선한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 모두에게 ‘리스타트’를 추천할 만하다. 멜 깁슨과 나오미 왓츠, 켄 정, 양자경 등 주력 장르가 다른 배우들을 한 편에 모은 흔치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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