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영끌했는데 현타온다" 거세지는 청년들의 분노

"빚내서 영끌했는데 현타온다" 거세지는 청년들의 분노

2030 "불공정 사회에 분노"...LH 관련 국민청원 21건
"신도시 철회" "변창흠 국토부 장관 사퇴" 요구 빗발

기사승인 2021-03-10 13:04:20
광명시 공무원이 매입한 가학동 토지. 연합뉴스
[쿠키뉴스] 임지혜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에 청년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과 전셋값 때문에 시름을 앓고 있는 20~30대는 그나마 믿고 있던 공공 주택 공급 주체가 오히려 부동산 투기에 앞장섰다는 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LH 직원들, 영끌하는 서민 보며 얼마나 우스웠을까"

10일 쿠키뉴스가 만난 시민들은 이번 LH 투기 의혹에 한 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해 8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영끌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시기에 대출로 어렵게 내 집 마련을 한 임모(30)씨는 "실거주를 목적으로 고민 끝에 영끌해서 정말 힘들게 지금 집을 매매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패닉바잉으로 청년들이 영끌한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서민들이 주식으로 푼돈이라도 벌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그들(의혹을 받는 LH 직원들)은 얼마나 우스웠을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양천구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은 이모씨(36)는 "열심히 살았는데 돈과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계속 잘 살고 없는 사람들은 바보처럼 산다는 생각이 들어 허무했다"면서 "비양심적인 공직자들 주머니 채워주기 싫어서 3기 신도시 계획도 다 엎어졌으면 좋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셋집에서 곧 나와야 할 처지에 있는 최모씨(33)는 "치솟는 집값에 매일 한숨만 나오고 주거가 불안정한 현실에 힘든 서민들이 많은데 LH 직원들은 땅 투기하며 즐거웠나"라며 "재수 없게 걸렸다 싶은 생각이 드는 직원도 있을 것이다. 이제서야 터진 거지 (공직자들이) 지금껏 얼마나 해먹었을지 가늠도 안 된다"고 분노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어렵게 중소기업에 취업한 김모씨(28)는 "적은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 갚고 생활비 쓰고 하면 남는 것도 없다. 나중에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 집은커녕 전셋집 마련도 어려울 것"이라면서 "사회 초년생이 많이 겪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LH 직원들이 투기에 앞장 섰다는 데 화가 난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청년들 고쳐지지 않는 '불공정 사회'에 분노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청년들의 한숨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수도권에 내 집 한 채 사겠다고 보험에 적금까지 깨고 영끌했는데 다음날 대출규제떠서 발동동거리며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난다"면서 "자기들도 부동산 투기하고 돈 벌면서 왜 우리한텐 하지 말라고 규제하고 난리를 치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노했다. 

또 취업 관련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신의 직장인 LH를 어떻게든 입사했어야했다"면서 "월급 받아 돈 벌고 땅 투기해서 돈 벌고 부럽다"고 비꼬았다. 맘카페 등에도 "애들 LH 입사하게 열심히 뒷바라지해야겠다" "의사, 변호사보다 LH 직원이 낫다" 식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분노한 이들은 한국 사회의 공정성에 또 다시 의문을 던진다. '불공정'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채용비리, 일부 정치인의 자녀 특혜, 재난지원금 선별·보편 지급, 사회적 거리두기 영업제한 조치 등 공정성과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끊이지 않아 왔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은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공정하지 못한 현실은 청년들에게 분노와 허탈감, 상실감만을 안겼다. 

블라인드 캡처
더욱이 땅 투기 의혹 파장이 커지면서 보여준 일부 LH 직원들의 비뚤어진 애사심은 민심을 등 돌리게 했다. 

전날 직장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난 열심히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며 다닐 것. 꼬우면(불만이면) 너희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던가"라는 글을 올려 공분이 일었다. 

이 외에도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LH 본사 앞에서 투기 항의 집회 중인 단체의 사진을 두고 "28층이라 하나도 안 들림. 개꿀"이라고 발언하거나 사내 메신저를 통해 "투기로 잘려도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시민들은 투명한 조사와 공정한 심판을 정부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달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 온 LH 투기 의혹 관련 청원글은 21건이나 된다. 투기세력을 엄벌하기 위해 3기 신도시 결정 철회를 요구하고 변창흠 국토부 장관 등의 책임을 묻는 청원들이 대다수다. 

전날 'LH는 누구를 위한 공기업인가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인은 "집 한 채 없는 서민의 돈으로 LH 임원 7명은 지난해 성과급으로 총 5억3938만원을 받았다. 공공기관 중 1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LH는 원주민에게 농지를 헐값에 사들이고 10년 공공임대분양전환아파트 입주민에게는 시세대로 분양해서 공기업은 성과금 잔치와 임직원들은 부동산 투기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긴다"면서 "집 한 채 없는 서민은 10년뒤에 시세대로 분양받으라고 하면 누가 살까?"라고 지적했다.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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