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전자 페놀 유출 30주년… 당시 검찰 1심 논고문 공개

두산전자 페놀 유출 30주년… 당시 검찰 1심 논고문 공개

전국 단위 환경단체 설립 계기… 룹 사업구조 변환에도 영향
논고문에 무단 방류부터 은폐까지 계획적 유출 과정 소상히 적혀
특종 보도 류희림 씨 “시민 제보-기자의 땀으로 발굴한 사건”

기사승인 2021-03-16 14:51:52

페놀유출 사건으로 인해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사진=류희림 사무총장/당시 KBS보도 캡처

[쿠키뉴스] 최기창 기자 =“자연환경을 훼손, 오염시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검찰 논고문 中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속에서 160만 명에 가까운 관객몰이에 성공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모티브가 된 ‘두산전자 페놀 유출 낙동강 오염사건’이 발생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국민 MC 유재석 씨가 데뷔 무대였던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선보인 “앗! 페놀 우유다”라는 멘트로도 익숙한 바로 그 사건이다. 

이 가운데 당시 정황을 더욱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검찰의 1심 논고문이 16일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됐다. 이 논고문은 해당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한 당시 KBS대구방송총국 기자 류희림(現 경주엑스포 사무총장) 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1심 결심 공판을 앞두고 검찰이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서류다. 

이번 논고문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 배출구와 상부보고과정 등의 내용이 소상하게 드러나 있다. 

두산전자 페놀 유출 낙동강오염사건은 지난 1991년 3월14일 밤 10시 경북 구미공단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 파이프가 파열되면서 발생했다. 이후 다음날 오전 6시까지 8시간 동안 무려 30톤에 이르는 페놀 원액이 인근 옥계천으로 쏟아져 나왔다. 결국 취수원인 낙동강이 오염됐고 물을 마신 대구시민들은 극심한 두통과 구토 피부질환 등을 호소하는 등 해당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바 있다. 

류희림 사무총장의 당시 보도 모습. 사진=류 사무총장/당시 KBS보도 캡처

페놀은 방부제와 소독, 살균제 등을 만드는 데 주로 사용하는 물질로 자연분해가 불가능하고 독성이 강하다. 물과 같은 색깔로 인해 맨눈으로는 구분이 힘들다. 가열해도 사라지지 않아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논고문에는 페놀 원액이 유출되기 5개월 전부터 페놀 폐수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방류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담겼다. 논고문에는 ‘지하 피트(PIT)안의 폐수를 집수하는 과정에서 탱크가 넘쳐흐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매일 1톤가량의 폐수를 방류함’, ‘폐수가 흘러나간 흔적을 가리기 위해 철판뚜껑 덮어 놓는 등 세심한 보안활동을 함’, ‘지하집수탱크 밑에는 밸브가 설치돼 있어 폐수가 밸브를 통해 배출구로 흘러나가도록 되어있다’ 등 상세한 무단 방류 과정이 나열돼 있다.

또한 ‘작업반장이 생산부 차장에게 5~6회에 걸쳐 폐수유출 사실을 보고했고 공장장에게도 사실을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함’ 등 은폐 과정도 적나라하게 적시했다. 특히 몇 달씩 무단 방류한 폐수의 페놀 농도를 배출허용 기준치인 5mg/ℓ의 무려 9000배에 가까운 4만4882mg/ℓ로 기록(경북도 보건환경연구소 시험성적서)하고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설치된 비밀 배출구를 통해 5개월간 370톤에 이르는 많은 양의 페놀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했고 이 사실을 실무선에서 보고했음에도 간부직원들이 묵살해 사건을 키워온 셈이다.

논고문에 따르면 검찰은 유독성 물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기업이 책임감을 느끼고 철저한 안전관리를 해야 했지만 이윤과 편의를 위해 지역민의 건강과 환경을 담보로 저지른 최악의 환경 사건으로 규정했다.

총 29쪽 분량의 이 논고문은 공장장 A씨와 생산부 차장 B씨에게는 각각 징역 5년, 생산2과장 직무대행 C씨 징역 4년, 작업반장 D, E, F씨는 각 징역 3년 등 중형을 구하면서 끝을 맺는다.

다만 이후 내려진 법원의 판결에서는 관련자들의 처벌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류 총장에 따르면 1심, 2심 선고를 통해 공장장 A씨와 차장 B씨, 과장 C씨는 각각 징역 1년, 작업반장 3인은 징역 8월을 선고하고 2년간 집행을 유예하는 대폭 감형이 내려졌다. 

류 총장은 “당시 환경 범죄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이 2008년 페놀유출 사건 등 또 다른 환경 범죄를 유발한 것인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당시 오염된 물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다사정수장. 사진=류 사무총장/당시 KBS보도 캡처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도 많은 여운을 남겼다. 우선 전국 단위 환경보도단체들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대검찰청에 환경과가 신설되는 등 우리나라 환경보호운동의 전기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대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개된 일도 있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이 사건을 계기로 터진 불매운동 여파로 소비재산업에 매진하던 계열사를 차례로 매각하는 등 기업의 주력사업을 중화학공업으로 바꾸게 된다. 

류 총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페놀 유출 사건은 당시에 워낙 큰 사건이었다. 독극물이 그대로 상수원에 유입되면서 대구시민을 비롯한 민심이 들끓었다. 정부차원에서도 검찰과 경찰이 총동원돼 합동조사반이 투입될 정도로 관심이 컸다”고 돌아봤다. 

그는 정부가 대기업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류 총장은 “3월 14일에 유출이 발생한 이후 4월 초에도 다시 똑같은 일이 있었다”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당시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했던 기자로서 영화를 통해 페놀 유출사건이 재조명된 점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했다. 

다만 영화의 내용이 실제 사실과 다른 점도 있다고 해명했다. 류 총장은 “영화에서는 삼진그룹 직원들이 유출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으로 표현했다. 이후 노동자들이 다음날 1면 톱기사로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사는커녕 광고로 바뀌어 나온 것으로 묘사했다”며 “실제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은 시민들의 수많은 제보를 토대로 기자들이 현장을 뛰어서 발굴해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페놀 원액 유출사건이 없었다면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전역의 주민들이 기약 없이 고농도 페놀에 오염된 수돗물에 지속해서 노출됐을 것이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3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환경보호와 위험물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mobydic@kukinews.com
최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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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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