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한마디로 ‘침과의 전쟁’이었다. 주최 측은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 금지, 두 좌석 띄어 앉기, 함성·환호·떼창 금지 등을 시행했다. 방역에 들어간 비용만 12억 원. 공연은 당초 3주에 걸쳐 6회 열릴 예정이었지만, 광복절 도심 집회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져 마지막 3회 공연은 열리지 못했다. 쇼플레이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떠안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60개 대중음악공연 업체를 조사해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대중음악(공연 관련) 업계 피해 영향 사례조사연구’에 따르면, 국내 공연기획사·공연장의 평균 매출은 전년 대비 18%에 불과했다. 대다수 대중음악 공연업계 종사자들이 생계 불안에 시달린다는 의미다. 정부지원금을 받기도 쉽지 않다. 임동균 쇼플레이 대표는 최근 쿠키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줘야 하는데, 언제 다시 공연을 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선 휴가를 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오는 4월은 대중음악 공연업계 분기점으로 꼽힌다. 쇼플레이가 제작하는 ‘미스터트롯’·‘미스트롯2’·‘싱어게인’ 콘서트를 비롯한 여러 대중음악 공연이 4월 개최를 준비 중이라서다. 현행 방역지침에 따르면 대중음악 공연은 ‘모임·행사’로 분류돼 거리두기 2단계에선 관객을 100명 미만으로 받아야 한다. 정부가 오는 4월11일까지 현행 거리두기 단계(수도권 2단계·비수도권 1.5단계)를 유지하기로 26일 결정하면서, 대중음악 공연업계 종사자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4월을 기다리고 있다.
1.5단계에선 5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모임·행사’ 진행시 지자체와 협의하도록 하지만, 대중음악 공연은 사실상 개최가 불가능하다. “지자체 대부분 몸을 사리는 분위기에요. 다른 지역 사례를 알고 싶다는 거죠. 서울-부산-대구 순으로 공연을 한다면, 대구에선 ‘부산 공연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고, 부산도 ‘일단 서울 공연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서울에선 100명 이상 관객을 받을 수 없으니, 서울은 물론 비수도권 공연까지도 열 수 없었던 겁니다.”
대중음악 공연과 달리, 뮤지컬·연극·클래식은 동반자 외 좌석 간 띄어 앉기를 하면 공연을 열 수 있다. 대중음악 공연업계는 ‘다른 장르 공연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객을 받게 해달라’고 거듭 호소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가수 이소라는 지난 3월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려던 공연을 취소했다. 임 대표는 “바로 옆 신한카드홀에선 뮤지컬 ‘위키드’가 공연하고 있었는데, 조용하기로 소문난 이소라 콘서트는 할 수 없다는 건 불공평하다”며 “(다른 장르 공연과) 형평성만 맞춰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대중음악 공연의 경우, 함성이나 떼창으로 인한 비말 전파 위험이 높다고 판단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지난해 8월과 11월 열린 ‘미스터트롯’ 콘서트엔 11만 명 넘는 관객이 몰렸지만 감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확진자가 다녀간 가수 윤도현의 대구 공연에서도 감염자는 없었다. 임 대표는 “무작정 공연을 막는 게 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앞선 공연 경험을 토대로 통일된 매뉴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스터트롯’ 공연을 통해 ‘이 정도로 방역하면 감염자가 나오지 않는구나’라는 노하우를 쌓았어요. 설령 감염이 1~2건 발생하더라도, 뭐가 문제였고 뭘 더 보완해야 하는지 살펴볼 기회를 줘야 하고요. 대중음악 공연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요. 이 상태대로라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대중음악 공연 산업이 부흥하는 데 10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임 대표는 “공연은 K팝의 근간”이라고 말한다. 한국 대중가수 최초로 그래미 후보로 지명된 그룹 방탄소년단도 예스24라이브홀(1000석 규모)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공연장 규모를 넓혀가며 성장했다. “공연 업계가 약해지면 차세대 월드스타를 발굴할 장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임 대표는 강조했다. 일각선 온라인 공연을 오프라인 공연의 대안으로 여기지만, 임 대표는 “온라인 공연은 또 다른 콘텐츠일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가수를 직접 보고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관객의 욕구를 온라인 공연이 충족해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다음 달 대형 콘서트를 여럿 앞둔 임 대표의 마음가짐은 비장하다. “작년보다 자신 있어요. 저희의 노하우뿐 아니라 관객 의식도 성숙했거든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고, QR코드 체크인도 자리 잡았잖아요.” 1년 넘게 공연을 기다려준 ‘미스터트롯’ 예매 관객을 생각하면 미안함이 크다. 임 대표에 따르면 공연이 여러 번 미뤄졌는데도, 티켓을 취소한 관객은 1%도 안 된다고 한다.
“작년 ‘미스터트롯’ 콘서트가 전 세계에서도 유일무이한 대규모 공연이었대요. 이런 성공 모델을 발전시켜서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언제 어떤 전염병이 생길지 몰라요. 그 때마다 공연을 금지하기보단, 전염병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게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쇼플레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