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가사들 [스물아홉 이지은]

아이유의 가사들 [스물아홉 이지은]

기사승인 2021-04-10 07:00:12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6세에 데뷔해 10대 시절 이미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인기 최정점에서 만인이 사랑하던 이미지에 돌연 균열을 내고 자의식을 드러냈다. 가수 아이유의 20대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때론 화려한 파티 같았고, 때론 치열한 전투 같았다. 마음에 아무런 의문도 남기지 않은 채 다음을 향해 간다는 아이유의 20대를 그가 쓴 가사로 돌아봤다.

“아주 깜깜한 비나 내렸음 좋겠네” - ‘싫은 날’(2013)

아이유가 21세 때 발표한 자작곡 ‘싫은 날’은 “집에 가기 싫은 날, 혼자 있기 싫은 날, 스스로가 싫은 날에 관한 곡”(‘리얼 판타지’ 앙코르 콘서트)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2010년 히트한 ‘좋은 날’을 패러디한 곡이지만, ‘좋은 날’처럼 사랑을 노래하거나 설렘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이유가 연습생 시절 일기를 토대로 지은 노랫말엔 불안함과 외로움만이 서늘하게 맴돈다. “왜 따뜻함이 날 더 춥게 만드는 거야”, “아주 깜깜한 비나 내렸음 좋겠네” 같은 뾰족한 가사는 오히려 화자의 막막한 심경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싫은 날’은 아이유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되 그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그리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감정을 묘사한다. 서러워하되, 누군가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지 않는다. 아이유는 그렇게 ‘좋은 날’이란 판타지에서 현실로 걸어 나왔다.
 
“맞혀봐, 어느 쪽이게?” - ‘스물셋’(2015)

다 큰 척과 덜 자란 척, 여우인 척하는 곰과 곰인 척하는 여우, 영원한 아이와 물기 있는 여자…. 아이유는 ‘스물셋’에서 양쪽 중 무엇이 진짜인지 맞혀보라며 듣는 이를 도발한다.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아이유는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라고 고백하는 ‘국민 여동생’이자, 남성 시선에서 조명되는 성애의 대상(‘하루 끝’ 뮤직비디오)이었다. “누군가 저를 좋아한대요. 그 이유가 제가 똑똑하게 굴어서래요. 약아서. (중략)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저를 싫어한대요. 제가 영악해서, 약아서 싫대요”(GQ 인터뷰)라는 말처럼, 아이유는 “모두가 사랑하는 그 여자”와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레드 퀸’)를 오고 갔다. 스스로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는데도, 자신이 정의한 적 없는 존재로 규정된 이가 겪는 혼란과 모순. 아이유와 이지은의 불화로 빚은 ‘스물셋’을 통해, 역설적으로 아이유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계기를 마련했다.

“빛이 나는 건 여기 있잖아” - ‘이 지금’(2017)

‘스물셋’에서 진짜 자신은 어느 쪽인지 “사실은 나도 몰라”라고 말하던 아이유는 2년 뒤 낸 ‘팔레트’에서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며 스스로를 긍정한다.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받아들이고, “이제 나와 친하게 지낼래”(tvN ‘유 퀴즈 온 더 블록’)라며 자기 자신과 화해한 결과다. 스스로 의심하기를 멈춘 덕분에 아이유는 “매우 반짝이는 건 오히려 나우(now·지금)”라고, “빛이 나는 건 여기 있잖아”라고 확신할 힘을 얻는다. 아이유는 이 곡 화자를 ‘미래의 아이유’로 설정해 ‘지금의 아이유’를 불러내고, 지금의 아이유는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이름에게’)라며 외로운 이름들을 불러낸다.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부를게”(‘러브 포엠’)라는 이타심,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결의는 스물다섯 살 아이유의 ‘스스로 바로세우기’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정해진 이별 따위는 없어” - ‘에잇’(2020)

아이유는 20대에 상실과 이별을 여러 번 경험했다. 특히 스물여덟 살은 그에게 “무력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우리’가 슬프지 않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렌지 섬’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억”(‘에잇’ 곡 소개)되는 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대로는 무엇도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공허함과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자는 그리움으로 절절하다. 슬픔 없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오렌지 섬’은 영원할 수 없지만 ‘오렌지 섬’에서의 기억은 8이라는 궤도 안에서 무한하게 이어진다. “이런 악몽이라면 영영 깨지 않을게”라고 영원한 기억을 약속하던 아이유는 이듬해 낸 ‘셀러브리티’에서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라며 떠나간 이를 위로한다.

“부디 행운을 빌어, 지겹게 보자고” - ‘어푸’(2021)

아이유는 대범하다. 거대한 파도 앞에서도 “게워내더라도 지는 건 난 못 참아”라고 승부욕을 드러내고, “너울과 함께 부서질 타이밍 그건 내가 골라”라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룹 악뮤 멤버 이찬혁이 작곡한 ‘어푸’는 아이유가 “지금 (자신의) 상황과 가장 닮았다”고 말한 노래다. 그는 자신을 연약한 ‘국민 여동생’으로 기억하는 이에겐 “원 이 사람아, 언제적 얘길 꺼내나”라며 가볍게 미소 짓고, “더 재밌는 걸 보여줄게”라는 호언으로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어푸’가 실린 정규 5집 콘셉트는 ‘20대에게 보내는 인사’다. 지난 10년을 충실히 보냈기에, 아이유는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라일락’)라며 기쁘게 20대와 이별한다. 30대를 맞는 마음에도 “아무 의문이 없어, 난”(‘에피소드’)이라는 확신이 가득하다.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행운을 빌어. 지겹게 보자고”라는 ‘어푸’의 가사는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아이유의 다짐이자, 노래를 듣는 당신 또한 무너지지 말라는 응원이기도 하다. 아이유다운 끝이자 시작이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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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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