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29일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제품의 흡입독성 실험 결과를 조작해 증거 위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조명행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상고심을 진행했다. 이날 대법원은 조 교수의 증거위조와 수뢰 후 부정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연구용역비를 다른 용도로 쓴 사기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조 교수는 지난 2011년 옥시가 서울대에 지급한 실험 연구용역비 2억5000만원과 별도의 자문료 명목의 12000만원을 개인계좌로 수수했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관련 옥시에 불리한 연구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누락한 최종 결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는 “사법부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가해기업들이 건넨 뒷돈을 받고 연구자의 양심을 판 ‘청부과학자’에 면죄부를 쥐어주고 말았다”며 “탐욕으로 뭉쳐진 이들의 동맹에 최소한의 법적 책임조차 묻지 못하는 사법부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앞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 책임자들에게도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 1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폐 질환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동물 실험 결과와 인체 피해 차이점을 간과한 판단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진상규명 업무가 중단된 문제도 있다. 지난해 12월9일 사회적참사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의 활동 기간이 1년6개월 더 늘어났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업무 범위가 피해자 구제와 제도 개선으로 축소됐다.
사참위 측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제도 개선과 피해 지원을 위한 조사 권한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 중이다.
1994년 유독물질이 함유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출시됐다. 2011년 판매중지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유독물질에 노출된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다. 지난 16일 기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7419명이다. 이 중 1653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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